뉴수단 정부에서 요청한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우리와 함께 할 사업파트너인 현지 사업가 무스타파(Mustafa)가 공항에 나와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무스타파는 현재 우간다(Uganda)의 수도(capital city) 캄팔라(Kampala)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대표(CEO)였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원래의 국적이 우간다가 아니었고, 에리트레아(Eritrea)였다.

그의 회사 직원이라고 하는 무하마드(Muhammad)와 몬슈(Monchou) 등 두 사람도 함께 우리를 반겨 주었고, 입국신고서를 대신 작성하여 주는 등 민첩하게 움직여 주었다.

어떻든 우리는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고, 현지인들과 악수를 하면서 첫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입국수속과 간단한 통관철차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화물(luggage)을 찾아 밖에 대기해 놓은 두 대의 차량에 분승해서 숙소로 향했다.

아직도 자동차로 숙소까지 41km를 더 가야 했지만 드디어 유숙(留宿)할 숙소로 향한다는 생각에 다소의 긴장이 풀리고 쌓였던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차량은 우리나라의 봉고 승합차와 비슷한 모델의 일본제 중고차량이었는데, 운전석이 오른쪽에 부착된 좌측통행 자동차였다.

이들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하에서 익힌 영국식 좌측 통행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엔테베공항에서 캄팔라 시내까지 가는 도로는 왕복 4차로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로가 온통 붉은 색깔을 띤 흙먼지(赤土粉)로 뒤덮여 있어서 주위를 온통 붉은색으로 색칠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일행이 유숙할 숙소는 이곳 수도 캄팔라 시내의 한 중심가에 있었다.

엔테베공항에서 시내 숙소로 들어가는 동안 도로에 통행차량이 많아 어찌나 혼잡한지 약 1시간 25분 만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곳 우간다에서 장기간 체류할 예정이었으므로 숙소를 호텔로 정하지 않고, 인도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Diamond Trust’라는 임대 아파트로 정했다.

아파트의 건물 높이는 약 20층 정도였는데, 우리 숙소는 5층에 위치한 방(room) 두 개짜리의 조그마한 아파트로 방과 방 사이의 거실과 한 쪽에 주방과 세탁기가 놓인 다용도실이 딸린 구조였다.

특이하게도 5층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반대쪽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바로 외부에 50평 정도의 넓은 베란다가 운동장처럼 펼쳐져 있었다.

본 아파트 건물의 다른 층에는 없는 무척 널찍한 베란다가 우리 숙소 층에만 유일하게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운동하는 장소로 쓰기에 매우 좋아 보였다.

또한 3면이 개방되어 있어서 바깥 공기를 쐬면서 시내 경치를 구경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긴 여독에 지친 우리는 이곳에 첫날 여장을 풀었다.

서울에서부터 긴 여행을 함께 하며 가지고 온 짐(여행 가방)을 풀어 옷가지와 먹을거리 등을 꺼내 품목별로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부터 답답하게 입고 온 정장을 벗고 간편복으로 바꿔 입었다.

앞 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숙소는 비록 넓지 않은 작은 아파트였으나 밖의 옥상 베란다가 운동장처럼 넓어서 실내 생활보다 실외 활동하기가 여러모로 편리해서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사용하는 방에는 침대 외에 작은 탁자와 전화도 설치되어 있었으나 전화는 이곳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우리 외교부 공관이 아니면 사용할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우리 방의 침대 세 개는 나와 K기술사, 그리고 J과장이 각각 하나씩 사용하기로 하고, 다른 방은 P사장, L이사 및 C사장이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A사 K사장은 이곳의 사업 파트너인 무스타파와 다른 곳에 투숙하고 있다고 했다.

당초 서울의 K기업(주) M본부장은 나와 K기술사를 호텔에 투숙케 하여 최고의 예우를 하라고 K사장에게 지시했기 때문에 K사장은 나에게 불편하다면 호텔로 모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우리 동료들과 함께 있는 이곳이 더 좋아서 그냥 있겠다고 했다.

여장을 풀고 시원하게 샤워를 마친 후 베란다로 나와 편안한 마음으로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capital city, Kampala) 시내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때의 시계 바늘이 이곳 시간으로 오후 5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12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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