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정부가 내년 예산안 당정협의회에서 문재인정부의 확장재정을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하되 서민·취약계층과 청년 지원을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예산 규모는 13년 만에 올해 총지출액(679조원)보다 줄어 640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건정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민생을 돌보는 묘책을 마련할 시기”라고 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정부의 손길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 청년, 민생에는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방향은 맞지만 긴축기조가 제대로 지켜질지 걱정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 사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짜는 건 바람직하다. 그런데 당정협의 결과는 의아하다. 여당이 구직청년 300만원 지급과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 50% 인상,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지급대상 2배 이상 확대, 농업직불금 확대 등 10여개 사업을 주문했고 정부도 예산에 반영한다고 한다. 사업마다 재원과 우선순위를 꼼꼼히 따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꼭 필요한 약자에게 실질 지원을 하되 세금이 허투루 낭비돼서는 안 될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제시한 병장월급 200만원, 기초연금 40만원, 영아부모급여 70만원 등 포퓰리즘 공약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엉터리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내국세 일부(20.79%)를 자동 배정하는 핵심규정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는 5년간 국정과제 소요재원을 209조원으로 책정했다. 쓸 곳은 많은데 세수여건은 경제여건 악화로 나빠지고 있다. 더구나 법인세 등 감세정책 탓에 향후 4년간 세금이 13조1000억원가량 줄어든다. 이러고도 문재인정부 때 바닥을 드러낸 나라곳간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필요한 재원은 국가부채 확대에 의존하지 않고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지출 재구조화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했다. 말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5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50%대 중반, 관리재정수지 -3% 이내에서 재정을 관리하겠다고 했다.

허리띠 졸라매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간접자본(SOC)사업과 중복·과잉 복지, 세금 일자리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대선 공약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재정준칙을 서둘러 법제화하고 가급적 ‘세입내 세출’ 원칙을 지킨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과도한 국가부채는 미래세대의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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