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도 여전하다. 전체 농가 중 쌀농사를 짓는 농가가 여전히 50%, 농업소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도 34%에 달하고 생산액도 쌀이 8조4000억원으로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기때문이다. 게다가 벼농사는 기계화율이 워낙 높아 육체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재배 면적에 따라 정부에서 직불금도 받는다. 고령화율이 높은 농촌에서 벼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그런데 쌀은 현실적으로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구조적으로 심각한 공급과잉이기때문이다. 1998년부터 2020년까지 23년간 쌀 공급과잉이 없었던 해는 딱 두 차례뿐.공급과잉에 따른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는 '시장격리' 제도를 이용하는데 남아도는 쌀을 시중에서 사들여 창고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처분하는 방식이다.올해만 해도 정부는 8500억원을 들여 37만t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했지만. 그럼에도 쌀값은 계속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쌀값 하락 초기에 충분한 양을 매입했어야 했지만 판단 착오로 세 차례에 걸쳐 나눠 매입하다보니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역부족이었다. 정부도 이유는 있다. 생산량 예측은 비교적 정확했으나 수요량 예측이 워낙 틀린 탓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쌀 소비를 줄였기 때문이다.그러자 국회가 농민단체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의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전격 통과시켜 버렸다. 겉으로만 보면 이제 쌀값 하락을 자동으로 막을 수 있으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길게 보면 쌀시장 왜곡을 더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그 피해가 농민과 농촌, 농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기때문이다. 초과 공급되는 쌀 전량을 정부가 사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 오랫동안 진행돼온 쌀 생산 조정이 완전히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쌀시장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적정한 수요에 맞게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 필수다. 그러자면 쌀 생산 면적을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최근 2년간 예산당국의 비협조와 농정당국의 안일함으로 실시되지 않았던 생산조정제를 다시 도입해 쌀 대신 다른 작물 재배를 늘리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농민들로서는 생산조정제에 참여할 유인이 확 줄어들게된다. 결국 쌀 공급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고, 이어서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장격리에 나서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기때문다.더 길게는 우리 농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제 한국 농업은 남아도는데도 쌀농사를 계속 짓는 데 자원을 투입하기보다는 부가가치와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농업이 더 강해지고 농민과 농촌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국회는 이런 양곡 관리법을 졸속으로 처리하지말고 멀리 내다보고 충분한 의견 수렴과 쌀 재배 농민들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김상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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