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새벽잠에서 깨어 아직도 여유로운 달빛을 보았다. 덥다덥다 해도 지난여름만큼 더운 해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간절했던 시간은 흘러 어느덧 가을바람이 혈관을 타고 돈다. 계절의 순환은 언제나 대자연의 섭리였지 미천한 인간의 몫은 아니었다. 불볕이었지만 참고 견디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세월은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새로움을 골목골목 흩어놓고 있다.

​비가 내리고 낙엽 지고 단풍이 물든다. 어둡고 쾌쾌한 냄새 진동하는 시국의 볼썽사나운 꼴을 바라보느라 국민들의 두 눈엔 시뻘겋게 충혈이 되었다. 정치 잘하라고 보내놓으면 모두가 개가 되는 세상이다. 찍고 나면 180도 달라지는 그런 사람을 찍은 내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사람들의 한숨이 늘어나는 시절, 그런 국민들의 심장에도 단풍처럼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이는 가을이 찾아갔으면 좋겠다.

​홀로 산행을 하며 가을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정치는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이며 누가 괜찮아 보이는가? 대답이 너무 쉽게 돌아왔다.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아니다가 아니라 ‘전부가 그렇다’라고 답을 한다. 국민의 의식은 질적 향상이 엄청나게 진보했음에도 척박했던 80년대의 정치나 투쟁보다 지금의 정치가나 투쟁가는 더 후퇴한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아니다 라고 주장할 가치조차 소멸된 형국이다. 무너지는 억장에서 화를 억누르려는 소리가 들린다.

​서로를 배척하고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대립의 정치가 서민의 삶을 위태롭게 하고 경제와 물가안정에서 정치인의 신뢰가 멀어져 가고 있다. 말로만하는 민생경제 살리기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월급 외에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도 이제는 두렵지 않을 만큼 예사로워진 문구가 된지 오래, 의료보험인상부터 각종 세금은 전부 올라있고 재산이랍시고 들고 있는 생계형 아파트까지 세금은 해마다 오른다. 기름 값, 가스 값, 전기요금, 그러고는 또 돌아올 김장철 배추값까지 폭등할 거라 예상하니 고정된 수입으로 살아가는 서민은 어찌 이 시절을 웃음으로 넘길 수 있으랴.

굳이 오르지 않은 것을 찾다보니 쌀값뿐이더라는 시골 아제의 푸념이 가을산을 돌아 메아리로 날아든다. 아무도 관심 없는 농민들의 쌀값 깎아 의원님들 세비 인상하려는 심산은 아니기를 바래본다. 올려놓은 세수로 어딜 그렇게 퍼주는 건지 나랏돈 공짜로 타먹지 못한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기대할 것 없는 정치부터 바꾸라고, 국민의 안위를 먼저 챙겨보라고, 새로운 사람을 투표해봤지만 거기도에만 입성하면 똑 같이 가공된 같은 제품의 불량 정치인으로 회귀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쌓여가는 낙엽위로 별빛이 흩어진다. 금융, 외환, 물가, 대북문제, 고용문제, 육아 출산문제 등등 챙겨야할 문제들은 늘리어 있고 같은 나라 딴 생각을 가진 여의도는 입으로만 ‘국민과 함께’를 외치는 시월이지만, 그래도 가을이다. 어쩌면 단군 이래 가장 버거운 진영간의 대립으로 끝 모를 양당정치의 불운 속에 우리 삶이 찌들어 가는 건 아닌지? 회한 속에서 우는 기러기가 사라지고 풀벌레 소리도 예전만은 못하다. 힘들다 힘들다하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우리 서민들의 그 가슴으로 그래도 가을은 찾아오고 있는가 보다.

이현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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