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해당 여부 모호 법적 규정 시급

기술보호 산업, 보안산업 차원서 육성 힘써야

최첨단기술 확보는 기업은 물론 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고급인력 양성과 스카우트,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의 경우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조선 등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침해행위도 치열하다. 기술 및 인력 확보전쟁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우리의 ‘최대 자산’인 고급 두뇌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특히 근래 중국 등지로의 ‘최첨단 과학기술 인력 유출’이 심해져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 8월까지 국가핵심기술 36건, 산업기술 109건이 해외로 유출됐거나 유출 전 적발됐다.

적발된 해외 유출 국가핵심기술 중에서는 반도체 분야가 8건으로 가장 많고 조선(7건) 디스플레이(6건) 전기전자(5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유출 건수는 2017년 3건에서 지난해 10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전 세계가 경제안보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의 주요 기술이 해외로 새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 유출 기술들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모호해 보다 분명한 규정과 엄중한 처벌이 요청되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제조사의 개발부장 A 씨는 ‘실시간 습식 식각(화학약품으로 표면을 가공하는 작업) 장비 제어기술’을 2016년 중국 기업에 유출했다. 이 회사에서 함께 일한 중국인 B 씨가 중국 업체로 이직하며 A 씨에게 기술을 넘겨줄 것을 제안한 것. 실시간 습식 식각 장비 제어기술은 디스플레이 두께가 설정된 목표에 이르면 자동으로 식각을 종료하는 국가핵심기술이다. A 씨는 지난해 1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지만, 올 1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중국으로 유출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1,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린 데 따른 것이다.

국가핵심기술이란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기술로, 기술 수출이나 인수합병 시 정부 신고나 허가를 거쳐야 한다. 10월 현재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자동차 등 12개 분야에 걸쳐 73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이에 비해 산업기술은 각 정부 부처가 지정하는 주요 기술로, 국가핵심기술에 비해 완화된 정부 통제가 적용된다. 지난해 말 기준 3942개가 산업기술로 지정돼 있다.

중국은 우리가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자동차·조선·항공·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인재를 끌어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이젠 한 술 더 떠 한국의 반도체 소재·장비 기업들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한국 장비업체에 대한 인수합병(M&A) 제안은 한국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생태계’를 통째로 가져가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에 걸쳐 길러온 고급두뇌인력을 더 이상 잃지 않으면서 계속 양성하고 지켜 나갈 수 있는 종합적인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날과 같은 기술경쟁 시대에서는 뛰어난 인재가 기업이나 국가의 으뜸가는 자산이 된다.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기업 백년대계’를 위한 인재 육성과 지키기에 국가 차원서 나서야겠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첨단산업 육성과 과감한 규제 혁파도 긴요하다. 당국은 기술인력 확보를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적극 시행하길 촉구한다. 정부와 산업계, 연구원 등의 긴밀한 협력 체제 구축이 절실하다. 물론 기술보호 관련 산업을 보안산업 차원에서 육성하는 데 각별히 힘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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