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어느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IDEA)처럼 그렇게 얻어지는 것일까. 한순간에 모든 비밀이 벗겨져버리고 모든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그런 느낌일까? 무엇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갓난아기는 아무 이유 없이 연일 웃어댄다. 고통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아직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게다. 아무것도 모를 땐 그저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식이란 것이 머리에 입력된다.

아, 이것이 고통이구나.

아, 이것이 슬픔이구나.

알면 알수록 머리는 복잡해지고 인생도 복잡해진다. 아이처럼 마냥 웃을 수는 없게 된다. 이제 나이 먹어 가는 것인가 싶다.

어느 날 아이는 ‘자라’를 처음보고 그 무시무시한 등껍질에 겁을 먹는다. 그리곤 솥뚜껑을 처음보고도 똑같이 놀란다. 아, 일전에 본적이 있는데 저렇게 생긴 것은 다 무서워...

머릿속에 입력된 수많은 지식들과 경험들은 관념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반복되어 학습되면서 편견 또는 선입견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지난날 학습한 수많은 지식들 가운데 지금까지 변치 않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행여 이제는 버려도 될 낡은 지식의 틀 안에 갖혀 새로운 것을 부정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과 몇 번의 특이한 경험들은 고정관념이라는 감옥 안에 우리자신을 가두어 놓곤 한다. 유난히 특정 정당, 특정 계통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깨달음은 지식이 지혜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얻어질 때가 많다. 과학기술을 통하여 원자폭탄을 만드는 기술을 알아내는 것이 지식이라면 이것이 결국 인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처분해 버리는 것은 지혜인 셈일 것이고....

언젠가 아이도 솥뚜껑처럼 생겼다고 해서 다 무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식이 지식으로서만 머물고, 그것이 깨달음을 통해 지혜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 전문가의 함정’에 걸려들게 된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빛바랜 지식들로 인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지 못한 체 타인의 생각과 주장을 단번에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이런 것들이 더 큰 세상을 보지 못한 우물안 개구리의 착각일 때도 있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게 정말 옳은 것이고 영원불멸의 진리일까?

우리는 때로 자신이 100%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지식들에게도 의심을 품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옳은 것인가? 혹시 누군가 인위적으로 주입시켜 놓았거나, 내가 스스로 만든 협소한 사고의 틀인 ‘전문가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지식은 그것을 스스로 의심해 보고 때로는 자신이 틀렸음을 깨끗이 인정하면서 지혜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광옥 칼럼니스트
이광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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