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이 만들어낸 예고된 인재였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29일(토요일) 밤 1015분 핼러윈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좁은 내리막길에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며 누군가 넘어졌다. 뒤따르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넘어지고 겹겹이 쌓여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SNS에서는 3~4년 전의 해밀턴 호텔 옆 골목 사진이 공유되면서예고된 인재라는 비판 댓글이 쇄도했다.

소방당국은 31일 오전 830분 기준 사망자 154 부상자 149명이라고 밝혔다. 부상자 중에서 중상자가 33명 정도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체 사망자 중 외국인 사망자는 26명에 달한다. 피해자 대부분은 10~20대로 사망자 성별은 남성 56, 여성 98명으로 확인됐다. 여성 사망자가 남성의 두 배에 육박해 사망자 3분의 2가 여성이었다.

이태원 사고 골목 앞에 놓인 꽃 무더기가 스산하다.
이태원 사고 골목 앞에 놓인 꽃 무더기가 스산하다.

예방책 없는 사고, 세월호와 다를 게 없다

해밀턴 호텔 옆 4m 폭에 40m 길이의 경사진 골목에서 앞사람 위로 넘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했음을 직접 확인했다. 핼러윈과 주말이 겹치면서 인파가 몰렸고 희생자들은 앞으로도 뒤로도 빠질 수 없는 상태였을 터이다. 골목 앞에 놓인 꽃 무더기가 스산했다. 세월호 수장 이후 최악의 참사이다. 2014년 세월호 수장 당시 안산 단원고에서 본 꽃 무더기가 떠올랐다.

야외 마스크 착용 해방 첫날인 핼러윈 축제 마당. 떠나간 젊은이들과 단원고 희생 학생들이 오버 랩 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수습을 마치는 대로 사고 당사자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원인 파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축제 현장에서 인파 통제는커녕 안전과 예방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큰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안산 단원고 정문에 놓여있었던 애처로운 꽃 무더기
안산 단원고 정문에 놓여있었던 애처로운 꽃 무더기

대통령 대국민 담화, 사후약방문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오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면서 “정부는 사고수습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사고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 장례 지원과 아울러 응급의료체계를 총력 가동해서 부상자들의 의료 지원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 발생했다”면서 “공무원을 일대일로 매치시켜 필요한 조치를 하겠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 관계 부처에는 핼러윈뿐 아니라 전국 지역 축제까지 긴급 점검해 질서 있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154명이 냉방에 갇혔으니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아닌가?

 

차량 통제 중인 해밀턴 호텔. 주변 상가도 휴무다.
차량 통제 중인 해밀턴 호텔. 주변 상가도 휴무다.

축제 줄줄이 취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경기 용인시와 동두천시, 서울 마포구가 핼러윈 축제를 취소했다. 서울 강북구 빨래골축제, 광주 무등산 산신 대제, 전남 목포 어울마당축제와 해상W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붐업 페스타, 곡성군 심청어린이축제, 구례군 피아골단풍축제가 취소 혹은 연기됐다. 모두 이태원 참사로 애도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와 같다.

도봉구 창동에 사는 송창주(남 59세) 씨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면서 “2002년 월드컵 당시 100만이 넘은 인파가 몰렸어도 아무 일 없었는데 불과 20년 후에 10만 인파에 154명이나 사망했다. 20년 동안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다지만 일부 무분별한 향락문화와 마약 이기주의가 더해지면서 너무 이른 선진국 파티의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는 말을 남겼다.

 

400여 명이 깔렸던 골목, 폭 4m 길이 40m에 불과하다.
400여 명이 깔렸던 골목, 폭 4m 길이 40m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실체적 후진국임이 입증됐다

대한민국은 2021년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선정 혁신지수 세계 1위다. 5세대 이동통신 5G는 세계 최초로 상용한 국가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국력은 세계 8위 일본을 앞질러 세계 6위로 도약했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은 한국의 드라마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K-팝, K-패션, K-푸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다.

이처럼 경제와 문화 강국인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후진국형 인재 참사가 발생했다. CNN은 “당국이 인파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어야”라고 지적했으며, AP통신은 “세월호 참사 이후 공공 안전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대중이 묻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즈는 “장기간 홍보했던 행사, 인파 관리와 계획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최창수 논설위원(서울총괄취재본부장)
최창수 논설위원(서울총괄취재본부장)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