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에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무스타파를 통해 콩고인들이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다는 전갈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내일은 우리 일행이 뉴수단 정부 요인들과 비행기를 타고 수단으로 들어가야 할 일정이 이미 약속되어 있었기에 다음 주 화요일에 오라고 연기시켰다.

저녁 시간이 되자 우리는 낮에 마트에서 사가지고 온 안줏거리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소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역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는 일은 K사장이 도맡아 했다. 방청소와 세탁 그리고 설거지는 현지인이 처리해 주었다. 잠시 앞에서 밝히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우리가 이곳 숙소에 들어온 다음 날 아침에 처음 보는 두 명의 젊은 여자가 왔었다.

누군데 어디서 왜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들은 청소와 세탁 등을 해주라고 관리(경비)실에서 보내서 왔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무스타파나 K사장이 건물 관리(경비)실을 통해서 보내준 도우미로 알고 한참 동안 방청소와 빨래 등의 허드레 일을 시켰다.

그녀들이 많은 빨래를 다 해놓고 있을 때쯤 또 다른 한 여자가 왔다.

나중에 온 한 여자는 먼저 온 두 여자들과 서로 자기네가 도우미 일을 하기로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어로 격렬하게 다투었다.

2:1로 다투다가 결국 나중에 온 한 여자가 되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후 이번에는 K사장이 또 다른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K사장은 먼저 와서 일하고 있는 두 여자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우리가 보기에는 먼저 왔던 여자들이 너무나 힘든 일을 다 해놓았기 때문에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K사장은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 일을 시키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서로 자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장본인들이라고 우기면서 다투었던 여자들은 건물 입구에 있다가 우리가 외지인인 것을 알고 따라 들어와 관리실에서 도우미로 보냈다고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어느 누구도 도우미를 보내달라고 부탁했거나 보낸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그녀들 스스로 알아서 찾아왔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모르는 여자들이 찾아왔을 때 신원확인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일을 시켰을 경우 자칫 귀중품 등의 물건을 도난당하거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된다고 했다.

처음에 와서 빨래 등 힘든 일을 하고 한 푼의 수고비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하는 여자들이 불쌍하고 측은해 보여서 나는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온 초콜릿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맨 마지막에 K사장과 같이 온 여자는 우리의 사업파트너인 무스타파가 불러서 보낸 사람으로 믿고 일을 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기회가 있을 때 다음에 또 하기로 하자.

내일 아침에 일찍 코만도 쿨 국무총리를 비롯한 뉴수단 정부 요인들과 함께 뉴수단 내륙으로 현장조사(site survey)를 가기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소주를 한 잔 더 마시기로 하고 숙소 바깥의 베란다 탁자에 둘러앉았다.

나는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많이 마시지 못하고 조금씩 즐기는 편에 속해서 우리 일행 중 좀 예외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이었다.

한참 대화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숙소 정면의 상업은행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이었다.

베란다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버스가 무단 횡단하는 행인을 치었는데,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잠시 후 경찰차와 앰뷸런스 차량이 와서 시신을 수습하더니 짐짝 치우듯이 싣고 가버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구경을 하거나 떠들썩하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이 속된 말로 개죽음이라고 했다. 보험제도가 없어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죽은 사람만 억울한 셈이었다.

-23회에 계속 -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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