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기 전에 본 교통사고로 인한 주검이 자꾸 뇌리를 스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나마 일행들과 마신 술기운으로 마음을 다소 안정시키면서 잠시 시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상업은행 한쪽 벽에 젊은 남녀가 부둥켜안고 한 몸이 되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러한 행동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우리의 성문화(性文化) 정서로는 치욕적(恥辱的)인 부끄러움과 남을 의식하는 도덕적 관념을 중시하고 있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성문화는 우리와 달리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개인적 향락을 더 중시하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밝게 반짝이고 있어서 지구와 더욱 가깝게 보였다. 태어나서 정말 이렇게 쏟아질듯이 선명하게 보이는 밤하늘의 별을 본 적이 없다. 쉽게 잠들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일 일정을 위해 억지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이곳 시간으로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4시)에 자동차편으로 엔테베공항으로 가서 다시 비행기 편으로 뉴수단에 들어가야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정말 아프리카 오지(奧地, backcountry)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탐사작업을 실시하겠구나!’하는 생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만반의 준비를 했다.

혹시 야지(野地)에서 야영(野營)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텐트와 맹독성 파충류를 퇴치할 명반(백반), 모기 퇴치용 모기향, 생수, 컵라면(비상식량), 쌀, 초콜릿, 휘발유 버너, 비상약품, 랜턴, 그리고 팩소주 등까지 모두 챙겼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엔테베공항까지 이동할 차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이곳 사업 파트너인 무스타파가 자신의 승용차를 직접 몰고 왔고, 그의 직원이 다른 자동차 한 대를 추가로 가지고 왔다.

우리 일행은 두 대의 차량에 짐을 나누어 싣고 분승하여 엔테베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항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무스타파 일행이 탄 자동차가 고장이 나고 말았다.

무스타파 자동차뿐만 아니라 이곳의 자동차들은 대부분 낡은 고물 자동차들이어서 굴러다니는 것이 기특할 정도였다.

결국 다른 자동차를 급히 불러서 공항에 도착하자, 뉴수단 정부의 코만도 쿨 총리와 촐 재경부장관, 그리고 케냐 대사로 임명된 닥터(Dr, 이름 미상)가 곧 바로 뒤따라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우간다 엔테베공항을 떠나는 것이었으므로 출국수속을 밟았다. 코만도 쿨 총리 일행은 뉴 수단 정부의 VIP 요인들이었으나 출국심사를 일반인들과 똑같이 했고,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엔테베공항에서 뉴수단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이곳에서 Eagle Air 항공사의 19인승 경비행기로 뉴수단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전세기였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대기하는 동안 Eagle Air 항공사의 여직원이 매우 친절하게 우리를 한쪽으로 안내해 주었다(원래 친절하게 해야 정상이지만...)

빵과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내가 Eagle Air 항공사 여직원에게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우리가 뉴수단 정부의 고위층에서 초청한 VIP 손님들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통상 공항 내에서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엔테베공항에는 그러한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나는 Eagle Air 항공사 여직원에게 ‘사진을 촬영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양손을 들어 제스처를 보이면서 “Free”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같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의했더니 그녀는 쾌히 응해 주었다.

그녀와 나란히 손을 잡고 서서 기념촬영을 한 후 나중에 사진을 한 장 보내줄 테니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처음에는 가슴에 차고 있는 제복의 명찰을 가리키면서 이름(full name)을 가르쳐주기를 꺼려했다.

나는 그녀의 명찰 이름이 영어 약자(Ms, S)로만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Full name을 물었던 것이다.

내가 집요하게 여러 차례 물었더니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는지 결국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이름이 소피(Sophie)라고 했다.

주소는 이곳 엔테베공항의 Eagle Air 항공사로 보내면 될 것 같아서 따로 묻지 않았다.

-24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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