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외 행안장관 퇴진, 방송법 등도 갈등

당리당략 떠나 혈세 제대로 쓰일지 따져봐야

윤석열정부의 첫 예산안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퇴진 문제와 방송법, 노란봉투법 등을 둘러싼 입법 갈등에다 세법 개정안까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미 법정 시한(12월2일)을 한 차례 넘긴 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이 ‘2차 데드라인’인 9일 본회의 종료일을 넘길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 등이 참여한 2+2 회동에서 ‘윤석열표’ 예산으로 불리는 용산 이전 관련 예산 등에 대한 감액 문제와 ‘이재명표’ 예산인 공공임대주택과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 등의 증액 문제,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 개편과 관련한 예산부수법안 등에서 양측의 큰 견해차를 확인했다. 민주당이 이외 쟁점으로 꼽은 사안은 용산공원 개발 예산, 청와대 개방 예산, 법무부·행안부 경찰국 등 예산, 에너지 전환 예산, 예비비 규모 등이다. 여야 원내대표 간 최종 담판까지 가야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니 김진표 의장이 8∼9일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예고했지만 회의적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번 예산안은 정치 쟁점까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민주당이 무리하게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 여러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 하고 있고, 9일 이전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안을 제출할 것으로 보이면서 예산이 타협에 이르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야권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 등 여러 변수마저 쌓여 있어 역대 최장기 지각 예산 기록을 세울지 모른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결국 올해도 새해 예산안이 국회에서 졸속·깜깜이로 처리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선(先) 예산안 처리, 후(後) 국정조사 시행’에 합의했던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묻겠다며 느닷없이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카드를 새로 꺼내들면서 해임안과 국정조사, 예산안 처리가 뒤엉키면서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다.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이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이달 중 임시국회를 소집해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준예산 편성도 불가피할 수 있다. 준예산은 12월 31일까지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전년도 예산에 준해 예산을 편성하는 제도다.

예산안 처리 지연의 근본적 원인은 국회의 늑장 심사 악습이다. 정부 예산안은 해마다 9월 초 국회로 넘어온다. 하지만 여야는 국정감사 등에 힘을 쏟느라 뒷전으로 미뤄놨다가 11월이 돼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나마 여야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라 증·감액을 최종 결정하는 예산안조정소위 심사 기간은 1주일도 채 안 된다. 예결특위 정책 질의마저 이태원 참사에 파묻힌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 의회의 예산 심사 기간이 3~4개월에 달하는 것과 대비된다.

여야는 상습 지각 처리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을 만들어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두 차례(2014·2020년)에 불과하다. 스스로 만든 법까지 내팽개쳤으니 ‘집단 배임’과 다름없다.

국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혈세가 제대로 쓰일지 따져봐야 한다. 예산은 쓰기에 따라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이 되기도 하고, 지역구를 챙기기 위한 선심성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선거를 의식한 퍼주기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나라 곳간만 비게 만든다. 국회는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넘겼지만 그럴수록 졸속심사, 쪽지예산 등 구태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고 사용처와 액수가 적절히 분배됐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보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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