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 숙소와 같은 집들이 울타리 안 여기저기에 약 20채 정도 산재해 있었다.

집들은 어김없이 모두 하나 같이 큰 나무 밑에 지어져 있었고, 집 앞에는 잔디를 심어 정원을 만들어 놓았거나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숙소 건물과는 색다르게 좀 더 크고, 돔 형태(Dome style)로 지어진 건물로 안내되었다.

출입구 문 옆에는 뉴수단이 독립 후 사용할 견본(Sample) 화폐가 붙어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공간도 비교적 넓은 편이었고, 천정도 꽤 높았다.

전등을 켜지 않아 다소 어두웠지만 창문의 커튼을 젖히자 그런대로 밝아졌다.

실내는 들어오는 입구를 제외한 나머지 가장자리를 따라서 동그랗게 소파를 연결하여 붙여놓았고, 그 앞에 서류나 음료 등을 놓을 수 있는 탁자를 배치해 놓은 것으로 보아 회의장소일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코만도 쿨 총리를 비롯한 모든 일행이 이곳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내가 쿨 총리한테 맨 중앙에 앉으라고 권하고, 우리 일행은 격식 없이 나머지 자리에 앉았다.

이곳 사람들의 의식은 우리처럼 격식을 그다지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앞에서도 밝힌 바 있다.

쿨 총리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장소는 외부에서 VIP 손님이 방문했을 때 접대하는 장소 즉, 영빈관(迎賓館, reception hall)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쿨 총리가 배고플 텐데 지금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이 누추한 이곳까지 방문해준 것에 대해 정말로 매우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이곳의 여러 가지 실정 등을 말해주었다.

쿨 총리가 말한 이곳 실정 등에 대한 내용은 식사 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바가 있어서 나중에 따로 밝히고자 한다.

총리와 대화 중에 아주 유난히도 새까맣게 검은 피부를 가진 남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총리에게 자기네 나라 토속어로 뭐라고 보고하는 듯 했다.

쿨 총리는 잠시 후 대통령 영부인이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영부인이라고 하는 여자가 들어왔다.

키가 나보다도 한 10Cm나 더 커 보이는 거구의 아주 건장한 여인으로 덩치가 매우 우람했고, 엉덩이는 오리처럼 뒤로 툭 튀어나온 체형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처음 대하는 First lady 답지 않게 슬리퍼를 신고 들어왔다.

나는 당연히 쿨 총리가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를 영부인에게 양보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들은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부인이 앉을 만한 별도의 의자가 없자 따라 들어온 군인이 밖으로 나가더니 의자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군인이 들고 온 의자를 영부인에게 전해주자 역시 영부인도 아무런 격식 없이 출입구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우리 일행과 인사소개를 주고받은 후 먼저 우리 일행이 열악하고 누추한 이곳을 방문해 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환영한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이곳 실정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곳의 식자층(識者層, 지식인)은 영어를 매우 잘 구사했다.

나는 듣고 말할 수 있는 영어실력이 능통하지 못하다.

하지만 반은 알아듣고, 반은 흘려버리면서도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하면서 지내는 정도일 뿐이다.

영부인이 우리 일행에게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이곳에 온 한국인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자신은 뉴수단의 대통령 부인으로 이곳 마을을 본인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북부 수단과의 전쟁에서 부상당한 상이용사와 전쟁미망인 그리고 전쟁고아들이다.

특히 현재 이곳에는 오랜 기간 동안 남‧북 수단 간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전쟁고아)이 250여 명이 수용되어 있다.

- 29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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