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위축에 따른 수출과 투자 부진 속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내년 우리 경제가 위기에 봉착할 거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마저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대 6번째로 낮은 1.6%로 제시하면서 '경기 둔화'를 공식화했다.

22일 기획재정부의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내년 우리 경제는 1.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전망치 2.5%보다 0.9%포인트(p)나 하향 조정된 셈이다. 정부의 전망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8%), 한국은행(1.7%), 한국개발연구원(KDI·1.8%), 국제통화기금(IMF·2.0%),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1.9%), 하나금융경영연구소(1.8%), 한국경제연구원(1.9%), 한국금융연구원(1.7%)보다도 낮다.

심지어 2%대로 점쳐지는 잠재 성장률마저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성장률이 2% 아래로 내려간 적은 건국 초반인 1956년(0.6%), 2차 석유 파동 직후인 1980년(-1.6%), IMF 외환위기가 있던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0.8%), 코로나19가 확산됐던 2020년(-0.7%) 등 다섯 번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전 세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다"면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전망치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도 "이번 전망에서 정부의 정책 효과는 반영하지 않았다"며 "국민에게 우리가 처한 상황과 전망에 대해 객관적인 상황을 말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객관적인 상황에서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내년 우리 경제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 배경에는 세계 경제 위축으로 수출과 투자 부진이 이어지고 고금리 영향 등이 내수 회복세마저 제약할 거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1월 OECD 전망에 따르면 내년 세계 경제는 올해(3.1%)보다 낮은 2.2%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미국은 0.5% 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으며 유로존(0.5%), 일본(1.8%), 중국(4.6%) 등 주요국들의 경제도 어둡게 바라봤다. 영국(-0.4%)은 마이너스 성장을 점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즉 세계 경기가 위축되면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우리 경제도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실제 지난해(25.7%)에 이어 올해 1분기(18.4%)와 2분기(13.0%)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던 수출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 영향에 반도체 업황 부진이 더해지면서 10월(-5.7%) 내림세로 전환하더니 11월(-14.0%)에는 감소 폭을 키웠다. 이어 내년에는 4.5% 뒷걸음질하며 3년 만에 감소로 전환할 것으로 봤다. 설비투자도 올해(-1.8%)에 이어 내년에도 2.8% 쪼그라들 전망이다. 하반기 글로벌 공급 차질이 완화하면서 반도체·자동차 중심으로 3분기(7.9%) 투자가 일시 반등했지만, 내년 글로벌 경기 악화·반도체 업황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부진이 이어질 거라는 판단이다.

여기에 고물가·고금리도 지속되면서 서민들의 생계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소비자물가는 유가·곡물 가격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면서 올해(5.1%)보다는 상승 폭이 축소되겠으나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 2%를 웃도는 3.5%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저소득층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도 크다.

소비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회복 흐름을 보이겠지만 금리 상승으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2.5%의 낮은 증가세가 점쳐진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경제 전망을 다른 국내외 기관보다 비관적으로 바라본 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반면 내년 경기가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가 비관적으로 성장률을 제시하면 국민의 불안감을 키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로 목표치를 발표하는데 이번에 한은, KDI보다 성장률을 낮게 전망한 것은 그 정도로 경제가 심각하다는 의미"라며 "재정건전성과 물가 문제가 있지만, 경기를 연착륙시킬 수 있다면 추경 편성의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저성장을 극복하려면 수출 지원책 확대, 투자에 나서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등 정부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내수는 건설 경기가 침체하지 않도록 부동산 규제, 세금 완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경기 위축, 수출 부진과 함께 에너지 사용에 따른 무역적자, 금융시장 압박 등이 우리 경제에 크게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다"며 "경기가 위축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취약계층 지원 정책과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등으로 통화 정책을 긴축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확장 재정을 펼치는 건 방향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