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른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해 쓴 외신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90분을 쉬지 않고 뛰는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정신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국 대표팀은 세계의 강호들에 기술로 밀렸지만 그 대신 끈질긴 열정으로 맞섰다. 몸값 비싼 선수들이 다칠까 봐 몸을 사릴 때 우리 선수들은 이마가 찢어지면 붕대로 감았고, 코뼈가 부러지면 안면 보호대를 쓰고서 그라운드에 섰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한국 팀은 유효 슛을 하나도 날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았다. 많은 축구팬이 오히려 손에 땀을 쥐고 몰입했다”고 했다. 한국 팀은 기술 우위인 우루과이를 쉼 없이 압박했다. 가나전에선 비록 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어 두 골을 넣었다. 그 두 골 덕에 조별 리그 최종 순위에서 우루과이를 제칠 수 있었다. 포르투갈과의 3차전 때는 한국이 속한 H조 실시간 순위 그래프가 TV에 떴다. 전반 5분 한 골을 내주자 한 국 팀 순위가 주저앉았다.

후반 45분 끝날 대까지 꼴찌였다. ‘역전의 1분’ 드라마가 후반 추가 시간에 펼쳐졌다. 손흥민은 마스크를 쓰고 70m를 질주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임을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한 축구팬은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너무 극적이라고 욕먹었을 것“이란 댓글을 달았다. 한국이 포르투갈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진출했다.

로이터는 “손흥민은 한국이 준결승에 올랐던 2002년 월드컵 정신을 소환했다”며 “한국인 특유의 끈질긴 에너지로 유감없는 경기를 펼쳤다” 고 평가했다. 영국 BBC도 “한국 팀이 나쁜 스타트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았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 근대사도 그랬다. 식민 지배와 전쟁이라는 나쁜 스타트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향해 끈질기게 알려온 불굴의 역사였다. 수천년 패배 의식에 빠져 있던 우리가 이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고 성취하는 민족으로 거듭났다. 가나와의 경기 패배 후 스포츠 분석업체가 제시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9%였다. 그러나 안정환 MC해설위원의 말처럼선수들의 희생과 노력이 100%를 만들었다. 12년 만의 16강 진출이 단지 기적만이 아닌 여유다. ‘뻥축구’로 조롱받던 한국 축구는 2002년 4강 진출이후 성장을 거듭했다. 2010년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고, 손흥민 등 세계적 선수들을 배출했다. 4년간 국가대표팀은 파울루 벤투 감독과 함께 다양한 패스와 크로스로 공간을 창출하는 ‘빌드업’ 축구를 만들어 나갔다.

축구 통계사이트 풋몹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평균 점유율은 53.5%로 13위, 유효슈팅은 경기당 4.3회로 11위다. 정확한 크로스는 경기장 7.3회로 무려 2위다. 실제 우루과이전에선 22개의 슈팅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빌드업’이 성공한 것은 선수들이 각자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줬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측면 공수를 책임진 김문환, 김진수, 머리부상에도 붕대 투혼을 벌인 황인범, 절뚝거리며 필사의 수비를 펼친 김민재 등 모든 선수가 제 몫을 다했다.

그중 캡틴 손흥민의 헌신이 돋보인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독점왕 출신의 월드스타지만 대표팀에서의 역할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맏형으로 팀 전체를 조율하고, 늘 2-3명의 수비수를 끌고 다니며 공간을 만든다. 포르투갈전 역전골 당시만 해도 그의 주변에 7명의 수비수가 있었다. 선수들의 활약을 보며 대한민국도 하나가 됐다. 영하의 날씨에도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추위를 잊은채 선수들을 응원했다. 여야 정치권도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조직력과 팀워크가 빛난 대표팀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도 ‘빌드업’이 필요하다. 수준 높아진 축구만큼이나 우리 사회도 한층 더 성숙해지길 기대해 본다

나경택 논설고문
칭찬합시다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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