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각자 취향에 맞는 음식을 골고루 가져와 점심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의 빵과 생선 튀김, 닭고기 튀김 종류 등을 가져와 먹었는데, 내 입맛엔 약간 짜긴 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코만도 쿨 총리는 촐 장관, 전 자원부 장관, 케냐 대사, 영부인의 비서 등과 함께 우리에게 먼저 음식을 가져와 먹으라고 배려한 다음 우리 앞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식당 요리사가 우리한테 다가오더니 맥주를 마시겠냐고 물었지만 권하는 어조로 물었다.

우리는 각각 500㎖ 한 병씩을 마셨다.

이곳의 음료는 대부분 캔보다는 병에 담겨져 있는 상품으로 최소 기본량이 500㎖짜리였다.

조금 전 영부인과 함께 한 영빈관(?)에서도 보았듯이 이곳의 음료수(콜라, 사이다, 환타 등)는 모두 500㎖짜리로 다 마시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컵에 옮겨 마시지 않고, 그냥 병째 들고 마시거나 빨대를 꽂아 빨아마셨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 나는 실수로 군인들이 시멘트 몰탈로 방금 쌓아 놓은 식당 앞의 정원 경계를 밟아 무너뜨리고 말았다.

군인들이 부족한 자재를 가지고 열심히 쌓아 놓은 것을 무너뜨렸으니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어 영부인의 비서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식사를 마친 쿨 총리가 나에게 음식이 입에 맞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대답했더니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우리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나온 후 이곳에 선교사로 나와 있는 서양인들 몇 명이 늦게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맥주를 마시기 위해 안주로 닭튀김 등을 모두 가져와 먹어버린 후였으니 그들이 먹을 몫이 없을 텐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무척 맑게 갠데다 공해가 없는 청정지역이라 공기가 무척 상큼하고 좋았다.

식후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우리 일행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앉았다.

이곳의 기온이 몇 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보다 훨씬 무더웠다.

그러니까 캄팔라 시가 위도 상 적도 위치인데 반하여 이곳은 북위 약 5도 정도의 지역으로 이동한 장소인데 체감 상 습도가 다소 높은 것 같다.

햇볕을 직접 쬐이면 땀이 줄줄 흘렀으나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시원해서 견딜 만했다.

우리가 쉬고 있는 나무 그늘 장소로부터 10여 m 남짓 떨어진 장소에다 군인들이 또 다른 집을 짓고 있었다.

줄자가 없어서 나무토막으로 자 대신 길이를 재면서 톱으로 자르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또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총을 들고 그 옆에 앉아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병사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었다.

총을 들고 구경하는 군인은 보초근무 중이었고, 일하는 병사는 막사를 짓는 사역병이었다.

일하는 모습이 사실 열심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 한국인에 비하면 무척 게으른 편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앉아 담소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더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담배를 피울 줄 아느냐고 묻고, 한 개비씩 나눠 주었더니 무척 좋아했다.

이에 나는 아예 개봉한 담배를 갑째 주면서 동료들과 나누어 피우라고 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 식사를 마친 후 자신들이 거처하는 숙소 앞에서 팔뚝만한 무선전화기를 들고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왔다는 엔지니어에게 물어보았다.

엔지니어는 내 말에 긍정하고 귓속말로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CIA 요원들이 선교사로 파견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척하고 있다면서 이곳에는 진짜 선교사들이 와 있지만 그 중에는 정보요원들도 함께 와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정보요원들이 공식적으로는 선교사로 위장 파견된 사람들인 셈이다.

미국의 정보력이 이곳에까지 뻗치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CIA 요원들의 통화내용은 이방인인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을 본국에 보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31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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