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족한 전문가 논의 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이하 미래연)가 노동시장 개혁과제 권고문을 내놨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에 초점을 맞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가장 논길을 끄는 것은 ‘주 52시간제’의 유연 적용이다. 현재 1주 단위로 관리되는 연장근로 시간을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다양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주에 52 시간을 넘기더라도 기간 전체의 평균 근로 시간이 주당 52 시간 이하면 된다. 쉽게 말해 아이스크림공장 근로자가 여름철엔 많이 일하고, 겨울철엔 적게 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미래연은 일하는 낮과 출퇴근 시간 등을 근로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선택적 근로 시간제 정산기간을 전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하도록 했다.

현재는 연구개발 R&D 엄부 외에는 1개월로 제한 되 있다. 미래연은 나이가 들수록 월급이 올라가는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에 연계해 개편하고,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미래연의 이번 권고는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안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도 ‘미래연 권고를 토대로 조속히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의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고안이 노동시장 유연화에 중심을 두고 개혁의 방향을 잡은 것은 옳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주범으로 거론돼 왔다. 대표적 사례가 주 52시간제다. 제도의 본래 취지는 근로자들을 야근, 초과 근무 등 과중한 근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다. 많은 근로자가 주 52시간제 시행 뒤 초과 근무나 야근을 하지 못해 졸지에 임금이 줄어들었고, 기업인들은 일감이 있어도 일을 시킬 수 없어 애태워야 했다. 많은 이가 퇴근 후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 ’투 잡‘에 나서야 했고, 시중엔 주 52시간제 때문에 과로사 하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노동계는 권고안에 대해 “고용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사용자의 노동시간 활용 재량권을 넓혀 집중적 장시간 노동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했고, 민주노총은 ”저임과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관건은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되, 근로자의 건강권과 복지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사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공정시대에 맞춰질 노동 관련 제도들을 크게 손봐야 한다는 제안이다.

미래연은 경제활동인구 부족으로 성장률리 하락할 초고령 사회에 대비, 임금체제를 개편해 정년연장의 돌파구를 만들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한국에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정년 65세를 넘긴 은퇴자들에게 기업이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을 도입했다. 또 기업이 고령자의 고용을 꺼리지 않도록 직무성과급제를 통해 업무에 따라 임금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00인 이상 사업체의 56%, 노조가 있는 기업의 68%가 호봉제에서 기업들이 임금 높은 고연차 근로자를 줄이려고 한다. 월‧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규제하는 주 52시간제 역시 기업의 인력운용을 제약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경제활동 확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일하는 ‘긱 워커’ 증가 등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개혁은 피할 수 없다. 미래연이 관련 법제 개선에 근로자의 의견 반영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와 노동약자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조화롭게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경택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총재
나경택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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