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로 돌아온 우리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다시 모여 앉아 지금까지 본 이곳의 실상과 기후 등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주방장 녀석이 다가와 또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어떻든 오늘은 별로 할 일도 없고, 이들을 다소나마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위도 식힐 겸 주방장의 권유에 응해주었다.

이곳 숙소 밖의 정원과 마당은 군인들과 여자들에 의해 아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영부인은 어디선지 모터 양수기로 퍼 올린 지하수를 호스에 연결시켜 새로 만든 정원에 직접 물을 뿌리고 있었다.

정원에는 무슨 잔디 씨앗인지 이름 모를 파란 싹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영부인의 집무실은 우리 숙소 앞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중간에 우리가 앉아 쉬고 있는 느티나무가 있었다.

영부인의 숙소 옆에는 위성 수신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어서 아마도 그녀만이 사용하는 외부와의 통신시설인 것 같았다.

우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곳의 실정과 혹시라도 언제든지 북부 수단으로부터 폭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등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만약 이곳에서 죽는다면 어떻게 한국의 가족에게 소식이 전달될 것인가?

그냥 가치 없는 죽음으로 고국에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시신이 이곳 아프리카 땅에 버려지는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한국에 있는 가족 걱정 등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솔직히 이러한 걱정들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곳에 낮에 도착했을 때 영국에서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엔지니어라고 했던 한 친구가 와서 정원수 밑에 깔아놓은 하얀 돌멩이 조각을 주워 들고와서 우리에게 보이면서 마블(marble)이라고 했다.

마블은 가공하여 석재로 사용하는 암석으로 철분 등의 불순물이 없어야 하는 광석을 말하는데, 그가 보여준 돌은 마블이 아닌 백운석(dolomite)이라는 암석이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그는 끝까지 마블이라고 우겨댔다.

물론 마블과 백운석은 석회석과 같이 CaCO3로 화학성분은 같다.

그가 우기는 이유는 마블은 상품성이 높기 때문에 개발가치가 높아서 아마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에 대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어렸을 때 남·북수단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북부 수단 사람에 의해 카르툼(Kahrtoum, 북부 수단 수도)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처음에는 몸종처럼 잔심부름과 허드레 집안일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영국대사관 직원의 집으로 거처가 옮겨져 생활하다가 대사관 직원의 임기가 종료되어 본국으로 귀환할 때 그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에서 대학교육을 받아 엔지니어가 되었고,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남다른 배움을 가졌기에 어디에 가든지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국(뉴수단) 국민이 헐벗고 굶주리며 살고 있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어서 이곳에서 영부인을 도우며, 남부 수단의 독립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당연하지만 한마디로 그는 매우 훌륭한 애국자인 셈이고, 그와 같은 식자층이 세계 여러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했다.

그들은 독립이 되면 모두 불러 들어오게 해서 국가를 재건하는 데에 동참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오후 6시 경이 되자 어둠이 밀려오자 낮에 보았던 발전기가 가동되었다.

그러나 실내는 불이 켜졌지만 바깥의 정원이나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는 외부 등이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칠흑 같이 어두웠다.

그 이유는 북부 수단으로부터 폭격을 피하기 위해 외부에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자연 등화관제였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금광(金鑛, ore mine)이 있다는 카포에타(Kapoeta) 지역으로 현장조사(site survey)를 가기로 되어 있었다.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고 불렀다.

저녁식단은 점심식사 메뉴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 35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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