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단에 나왔던 닭튀김을 비롯하여 염소고기 튀김, 밀가루 빈대떡(피자), 빵, 채소스프 그리고 스파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열대기후로 음식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주로 튀김종류를 좋아하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코만도 쿨 총리를 비롯한 뉴수단 정부요인들과 또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곳은 자연 바람을 쐬면서 더위를 피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가장 적절했다.

내일 답사할 일정에 대해 미리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는데, 현장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새로운 사람이 함께 자리에 합석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체구가 다소 왜소한 편이었는데, 다름 아닌 전 자원부장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시골 농부가 들판으로 일하러 나가기 위해 나온듯한 복장에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이 장관을 역임했을 인품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구사는 매우 능숙했다.

그는 우리에게 뉴수단 내 여기저기에 금광이 산재해 있고, 원주민들이 수집한 금을 내일 바로 구매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또 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지역은 발로 땅을 헤치기만 해도 금을 발견할 수가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 어딘가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뉴수단 내에 금이 많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벌써 개발되었을 것이고, 당연히 뉴수단 국민도 이토록 가난하게 살고 있지 않을 것이 아닌가!

어떻든 내일부터 현장조사를 해보면 결론이 날 것이다.

우간다에서 불법(?)으로 입국한 수단 내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현장조사를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잠을 청하기 위해 일찍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 눕기는 했으나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영부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혹시라도 북부 수단의 전투기가 폭격을 해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스러운 생각이 엄습해 왔다.

부지런한 K사장은 일찍 일어나 동이 트려면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새벽 4시경(한국 시간 오전 10시) 우리 일행을 깨우러 다녔다.

실은 나도 밤새 잠을 설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미 깨어 있는 상태로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간밤의 잠자리는 약간 후텁지근한 기온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불을 덮고 잔데다 모든 것이 생소해서 다소 불안감이 작용했던 까닭으로 잠을 더욱 설쳤다.

발전기 가동은 밤 11시경 멈췄고,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문을 열어놓고 자고 싶었지만 각종 벌레와 모기가 극성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혹시 모를 야영까지 할 각오로 든든하게 짐을 챙겨 새벽 5시에 출발했다.

K사장은 우리 일행이 아침식사가 당기지 않아 먹지 못한 빵을 혹시 이동 중에 배고플 때를 대비해서 짐 속에 챙겨 넣었다.

그는 오랜 아프리카 생활에서 얻은 경험 때문인지 항상 유비무환 정신으로 임했다.

조사 대상 목적지는 자동차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카포에타(Kapoeta) 도시 인근의 금광지역이라고 했다.

이동차량은 이번에도 역시 무장군인이 탄 선도차가 앞장을 섰고, 나는 코만도 쿨 총리와 함께 중간 차량에 탑승하고, 뒤 차량에 K사장 일행과 촐 재경부장관 등이 타고 따라왔다.

새벽공기는 시원하고 매우 맑게 느껴졌다.

이곳은 어디를 가든지 비포장 길로 앞에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도로라기보다 우리나라의 우마차길 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길은 사막지대 평원 위에 끝없이 이어졌고, 도무지 산이라고 생긴 지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어쩌다 홍수 비에 깎여 내려간 웅덩이진 곳과 말라붙은 하천바닥이 간헐적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자동차는 이러한 길을 덜커덩거리면서 달리다 바퀴가 진흙탕 속에 빠져 모두 내려 밀고 당기는 등 고생의 악순환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모두 심신이 지치기 시작했다.

- 36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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