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 중 L이사가 고통을 호소해 왔다.

그는 몸살이 난 것처럼 아프고 열이 나며 식은땀을 흘렸다.

차라리 그를 캠프에 두고 올 것을 너무 무리하게 강행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되돌아갔다가 다시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한국에서 챙겨온 비상의약품을 꺼내 L이사에게 건네주며 복용하라고 했다.

내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어느 병원의 수간호사가 이국 오지에 나가 있는 동안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하라면서 여러 가지 의약품을 꼼꼼하게 충분한 양을 챙겨주어 가져왔다.

약품 용기마다 어떤 경우에 어떤 약을 얼마만큼 복용하라는 것까지 스티커에 일일이 기록해 주어서 매우 편리하고 유용했다.

자동차가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언덕에 보기 드문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K기술사는 이곳에 잠시 내려서 함께 지질과 암상(岩床)을 살펴보기로 했다.

광물을 함유하고 있을만한 지질조건인지를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특히 금광상(金鑛床)을 형성할만한 지질조건과 암상인지를 살펴보았으나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도 남부 수단 정부 사람들은 암석의 색깔이 특이하거나 모양새가 이상하게 생긴 돌이라면 무조건 광물성분을 지닌 것처럼 여기며 들고 와서 물어보기에 바빴다.

이제는 엊저녁에 말했던 전 자원부장관의 이야기에 서서히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캠프를 출발한지 약 3시간 정도를 달려 드디어 카포에타(Kapoeta)로 들어가기 전에 금을 채굴하고 있다는 첫 번째 한 장소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이 지역의 이름은 나루스(Narus)라고 했다.

자동차가 좁은 소로 길과 나무를 밟고 지나면서까지 조금이라도 더 갈 수 있는 장소까지 들어간 다음 차에서 내려 약 20분 정도 더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걸어가는 길목 주위에서 원주민들에 의한 채굴적(채굴한 흔적)을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금광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주변 풍경을 캠코더에 담고 있는 나에게 자원부장관이 “디지털 캠코더냐?”고 물으면서 화인더(finder) 모니터에 영상이 보이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뙤약볕에 날이 더워 진땀을 흘리면서 도착한 장소에 원주민 한 사람이 토굴을 파고 있었는데. 그는 토굴 속에서 금을 찾고 있었다.

원주민은 우리의 호미 같이 생긴 기구를 사용해서 자신의 몸이 하나 겨우 들어 갈 정도로 좁게 파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토굴을 파서 하루에 금을 얼마나 캐느냐?”고 물었다.

원주민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지 대답은 하지 않고 눈만 껌뻑거렸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해서 자신들만이 통할 수 있는 토속어를 사용했고, 영어 등 외래어는 알지 못했다.

원주민이 파들어 가고 있는 토굴의 깊이는 순수한 인력에 의한 작업이었으므로 직경이 겨우 1m 내외에 불과했다.

이런 식으로 파고 들어간 토굴 채굴적은 주위에 무수히 많았으나 과연 금을 얼마만큼 채취할 수 있었을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전문적이긴 하지만 혹시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동종 업계의 관계자들을 위해 이 지역에 대해 조사한 지질과 광상에 대한 기술적 내용을 간략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본 지역의 지질은 선 캠브리아기(Pre-Cambrian)로 사료되는 편암(schist) 내에 열극을 충진한 점토, 라테라이트(laterite)와 다수의 석영 전석(quartz float)으로 기반암(基盤岩, bed rock)을 구성하고 있으며, 비교적 단단한 표토 층으로 피복되어 있었다.

모암(母岩, country rock)인 편암 중에는 무수히 많은 석영맥(quarts vein)들이 주입되어 노두(露頭, out crop)가 계곡의 침식부에서 관찰되었다.

원주민이 작업 중인 채굴적의 단면을 보면 기반암까지의 심도는 약 2~3m 정도로 깊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었고, 기반암의 일부가 지표에 노출되어 있었다.

금광상의 부존 유형은 첫째, 풍화되지 않은 암반 중의 함금은(含金銀) 석영맥 광상(鑛床, ore deposit)이거나 둘째, 모암 중에 주입된 다수의 함금은 석영맥이 오랜 기간 동안 침식되고 풍화됨으로써 맥석광물(脈石鑛物)이 삭박(削剝, 깎임 현상)된 다음 비중이 높은 금 입자(粒子)는 기반암까지 침강, 이동되어 잔류, 농집된 토금(土金) 또는 사금(砂金) 형태의 금광상이 형성된다.

이곳에서 원주민들이 채굴하고 있는 주 대상의 금광상 두 번째 것이었다.

- 37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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