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적막이 흐르고 있을 때 밖에서 병사 한 사람이 콜라 등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왔다.

병사는 내 옆에 서서 가져온 음료수 병뚜껑을 Open하는데, Opener를 거꾸로 사용하다 보니 병뚜껑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내가 Opener 사용을 바로 사용하도록 행동으로 가르쳐 주었지만 그는 당초 하던 대로 거꾸로 따려고만 했다. 또다시 바로 가르쳐 주었으나 그는 가르쳐 준 방식을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익힌 방법대로만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식민지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온 타성 때문이었다. K사장이 다른 장소 한 곳을 더 조사해본 후 철수하자고 내가 제안한 말을 코만도 쿨 총리에게 전했다. 그러자 험악했던 분위기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고, 그때부터 여러 가지 또 다른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 중에 다른 병사가 와서 총리에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그러자 쿨 총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다시 옮기자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곳 현지인에게 총리가 앉아 있던 자리 위에 걸려 있는 사진이 대통령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식사 장소는 당초 회의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처음에 갔던 곳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식사를 하는 장소 옆에는 손을 씻을 수 있는 물과 비누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맨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를 가진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식단은 빵과 닭고기 튀김, 양고기 조림 등으로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고 많이 짰다.

음식 맛은 별로 없었으나 양고기에서 노린내는 나지 않았다. 음식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어떻든 땀도 많이 흘렸고, 또 흘려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배를 채워야 했다.

전 자원부장관이 제안하는 말을 들은 쿨 총리가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한 금광지역을 조사해 보자고 했다.

그렇지만 나와 K기술사는 쿨 총리가 하는 말이 전 자원부 장관의 허구(虛構)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떻든 우리는 그들의 요구를 응해 주기로 하고, 광상(鑛床) 조사를 더 해보기로 했다.

그들의 요구를 응해주고 난 다음 우리가 본 광상 조사결과 전반에 대한 판단과 우리의 의지를 진솔하고 분명하게 밝혀 그들의 허황된 생각을 깨우쳐 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시 자동차를 타고 광상이 부존하고 있다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카포에타(Kapoeta)를 빠져나와 출발한지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앞 선도차(경호차량)가 갑자기 멈추더니 군인들이 총을 겨누면서 차에서 내려 민첩하게 움직였다. 나는 갑자기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서 긴장된 상태로 밖을 내다보았다.

시야에 아주 허름한 군인초소가 들어왔다. 그런데 아이를 등에 업은 두 여인이 초소 지붕에 얹어 놓은 함석판을 가져가는 것을 선도차량 군인들이 본 것이다.

아마도 여인들은 함석판을 실생활에 사용하거나 고물로 팔아 생계를 잇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군인들은 두 여인을 가로막고 제지하면서 함석판을 내려놓으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매우 보잘 것 없는 허름한 가건물 초소였지만 군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중요한 군사 시설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고 용서할 수 없는 사안일 것이다.

잠시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M60 기관총 탄환(총알)이 흩어져 있었다. 탄환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탄피에 탄두가 그대로 박혀 있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이곳은 과거 진지역할을 했던 치열한 격전지였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 한쪽에는 고장 난 휴대용 46mm 무반동총도 버려져 있었다. 군인들은 기관총 탄환을 모두 수집해서 가져갔다. 다시 얼마를 달렸을까,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도 역시 평활한 대지에 집들이 집단으로 군(群, 무리)을 이루고 있었다.

- 40화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