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를 태우고 다녔던 차량이 고장이 난 모양이다.

병사들은 진땀을 흘리면서 차 밑으로 들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탈착하면서 수리했다. 스페아(보조) 타이어도 떼었다 붙였다 반복했다.

이제는 시계를 보는 것도 귀찮아져 몇 시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빨리 캠프로 돌아가 쉬고만 싶었다.

자동차를 다 고쳤는지 카포에타에서 늦은 시각에 캠프를 향해 출발했다. 쿨 총리도 피곤함 탓인지 앞좌석에서 계속 잠에 취해 있었다. 올 때와 똑같은 길을 되돌아가는데, 우리 뒤를 따라오던 차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그 차엔 지저분하게 생기고, 금광상에 대한 거짓말을 가장 많이 했던 졸장부 자원부 장관이 타고 있었다.

자원부 장관은 우리와 목적지가 달라서 중간 지점에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대략 두세 시간 정도 달려온 것 같은데, 결국 우리가 타고 온 자동차에 이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뿔사~ 우측 앞 타이어에 펑크가 났고, 출발 전에 떼었다 붙였다 반복했던 스페아 타이어는 어디론지 떨어져 나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선도 경호차가 떨어져나간 스페아 타이어를 찾으러 간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거꾸로 거슬러 나서야 했다.

선도 차에 타고 있던 K사장과 촐 재경부장관, 케냐 대사(엔지니어, 박사), 무스타파 등이 내렸고, 몇 명의 군인들도 따라 내렸다.

그런 다음 운전병과 두 명의 병사만 타고 차를 되돌려 타이어를 찾으러 왔던 길을 되돌아 떠났다. 이 때의 시간이 자정을 넘긴 새벽 0시 40분이었다. 쿨 총리와 촐 장관 등 일행은 아예 비포장도로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K사장은 아프리카 생활에 익숙한 탓인지 역시 노련한 생각을 했다. 타이어를 찾으러 간 군인들이 출발지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려면 적어도 5~6시간 정도 소요된다면서 우리는 여기에서 아예 잠을 잘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운 위치에서 타이어를 찾아오기 전에는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K사장은 버너를 꺼내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 허기진 배를 채운 다음 소주도 한 잔씩 마신 후 잠을 청하자고 했다.

당초 광상조사를 위해 출발할 때 가지고 온 텐트도 치자고 했으나 그렇게 하기엔 너무도 지쳐 있었다. 그렇다고 차안에서는 너무 더워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K사장은 노련한 솜씨로 먼저 라면을 끓였다.

물이 부족해서 식사 후 입가심만 할 정도의 물만 남기고, 모두 라면과 밥을 짓는데 사용했다.

우리만 먹을 수가 없어서 컵라면을 끓여 쿨 총리 일행과 군인들에게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K사장은 그들이 수저를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무스타파에게 알아서 먹도록 설명해 주라고 했다.

무스타파는 과거에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한국 음식을 많이 접해 보았기 때문에 라면을 아주 잘 먹었다. 그렇지만 총리 일행과 군인들은 생전 처음 맛을 보며 먹어보는 라면이라는 음식이 입맛에 맞을지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라면을 어떻게 먹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우선 식혀가면서 그냥 입을 대고 후루룩 후루룩 국물을 마시고, 면은 입술에 걸리면 당겨서 먹거나 아니면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면서 잘도 먹었다. 우리는 수저와 포크까지 준비해 왔기에 밥까지 지어서 라면 국물에 말아 먹었다. 너무 피곤한 탓인지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꺼내 놓았으나 한 사람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앞에 있는 병사 한 명은 갖다 준 라면을 먹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 병사는 우리가 전진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각각 한 명씩 총을 어깨에 메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양 방향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군인이 앉은 채로 보초를 서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45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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