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수단 국민생활의 실상은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국민은 오랜 전쟁으로 인하여 50여 만 명이 인접 국가 케냐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고, 국내의 성인 남자 대부분은 군인으로 징병되어 죽거나 부상을 당해 불구자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군인으로 차출되는 것을 오히려 좋아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국민 삶이 워낙 어렵다보니 굶주려 죽는 것보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게 낫다고 했다. 그러한 죽음은 바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보람된 죽음이고, 군인 신분으로 근무하는 동안은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로 지각이 있는 식자층은 나라(뉴수단)의 독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고, 나아가 독립 후 국가발전을 위한 장래의 경제개발 프로젝트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땅만 가지고 있을 뿐 거의 황무지에 가깝도록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어서 인프라 구축은 물론 재화로 회전시킬 수 있는 경제원 개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들의 전언에 의하면, 석유와 우라늄광을 포함한 몇 가지의 재원으로 충당할만한 지하자원은 풍부하다고 했지만, 이를 개발할 그들의 재력과 기술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반시설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어디에서부터 무엇에 대해 먼저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따라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개발이 기반시설로 바로 도로개설 문제였다. 여기에서 생각나는 게 있었다.

경인고속도로에 이어 1969년도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건설하겠다고 했을 때, 당시 야당 대표(후에 대통령이 된 분)가 국회에서 말하기를

“우리나라 실정에 무슨 고속도로가 필요하냐? 아직 고속도로를 개설한 실정이 못되니 그 돈으로 굶주린 국민의 배나 채워주어라.”라고 했었던 말이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지 않았다면 당시 대한민국은 여자들 머리나 잘라 가발이나 만들어 수출하고, 재봉틀이나 돌리던 가내수공업 시절에서 급속적인 경제발전으로의 기대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뉴수단을 독립국가로 만들고, 경제개발을 하겠다고 뛰어다니는 정부의 행정수반 요인들!

그들은 이러한 도로공사를 우리에게 의뢰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 캠프에서 우리 일행과 뉴수단 정부 요인들 간의 만남은 항상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오늘의 미팅은 그들과 이제 그동안 보고 들으면서 조사한 결과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하여 결론을 내리는 셈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들을 총괄 정리하여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뉴수단은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고, 경험도 없으므로 한국의 여러분이 기획해서 모든 일을 해달라는 것이다.

도로공사의 경우에도 계획, 설계, 시공, 감리 등 모든 것을 턴키로 맡아서 시행해달라면서 도로공사는 우선 가장 시급하게 우간다 국경에서 뉴수단의 수도 예정지인 주바(Juba)까지로 약 2백Km를 건설해야 하며, 나아가 석회석 광산을 개발해서 뒤이어 포장공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미국으로부터 받는 원조금 20억 달러의 재원으로 이를 충당할 예정이며, 우선 우리에게 장비비로 200만 달러를 지급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중 50만 달러를 선급금으로 우선 지불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금광산과 다이아몬드광산 그리고 석회석광산을 개발해달라고 하면서 개발에서 얻는 수익금은 국가 경제개발에 모두 재투자하겠다고 했다.

처음 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그들은 아무런 산업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모든 프로젝트가 새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또 늦어도 내년 독립예정일(당시 2003년 1월 15일) 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화폐를 찍어 달라고 했다.

나아가 수도 주바에 텔레비전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을 건설해달라고 주문했고, 국민들의 낙후된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립식 주택을 지어달라고 했다.

주택은 우리가 원하는 지역의 땅을 얼마든지 제공해줄 터이니 이를 개발하여 조립식 집단주택을 지어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20만Kw의 발전소(Power plant) 건설을 주문했고, 대부분의 국민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학교를 지어달라고 했다.

- 48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박정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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