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검은돈’ 기능이 처음 부각된 곳은 키프로스였다. 러시아 재벌의 조세 피난처였던 키프로스가 2013년 금융위기로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EU는 10만 유로 이상 예금에 대해 40%의 세금을 물릴 것을 요구했다. 놀란 러시아 재벌들이 비트코인으로 갈아탔다. 개당 40 달러이던 비트코인 가격이 한 달 새 150 달러로 폭등했다. 비트코인에 ‘디지털 금’ 이란 별칭이 붙었다.

2019년 비트코인이 개당 6만 8790 달러(약 9000만원)을 찍으며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자 세계적으로 코인 광풍이 불었다. 미국 컴퓨터엔 시니어들의 장난삼아 만든 도지코인의 하루 거래 금액(17조원)이 한국 증시 총거래액(15조원)을 웃도는 일까지 등장했다. 한국산 토종 코인, 김치코인도 우후죽순 생겼다.종류가 600종이 넘고 시가 총액은 23조원에 달했다. 김치코인 투자자가 690만명까지 불어났다. 코인 사기가 판을 치기 시작했다.

사기수법은 러그 풀, 돼지도살 등 크게 2가지다. 가상화폐를 개발한다면서 투자금을 모은 뒤 야반도주하는 수법이 러그 풀이다. 양탄자를 확 잡아당겨 사람을 넘어뜨린다는 뜻이다. 진돗개 이미지를 활용한 ‘진도지 코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착안해 만든 ‘스퀴드 코인’이 러그 풀에 속한다. 돼지 도살은 처음엔 소액 투자금을 돌려주며 안심시킨 뒤 판을 키워 거액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상화폐 범죄로 인한 패액이 4조7000억원에 이른다.

대표적 금융사기 보이스피싱 피해액볼다 70% 이상 더 많다. 5년간 경찰이 잡은 코인 사기꾼이 1976명에 이른다. 블로체인에 기반한 코인은 거래기록이 모두 남아 있어 가기꾼 추적이 어렵진 않다. 그래서 코인 사기꾼들은 비트코인 대신 거래 거래내역 정보를 비공개하는 코인인 ‘프라이버시 코인’을 요구한다고 한다. 또 디지털 범죄 세상에선 거래 대상 가상화폐가 수사기관의 추적 대상인지 아닌지를 수수료를 받고 분석해 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서울 강남구 3인조 납치, 살인의 범행 동기가 가상화폐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코인 투자 피해자가 자기인생을 구렁텅이로 내 몬 가상화폐 관련자를 해친 사건으로 보인다. 욕망의 용광로 같던 코인 광풍이 우리 사회에 범죄의 씨앗도 뿌려 놓았다. 경찰이 공개한 인근 폐쇄회로 CCTV 영상에는 바닥에 드러둡듯 버티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여성을 괴한들이 끌고가 차에 태우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피해자는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몸부림을 쳤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납치 발생 장소가 강남 한복판 700채 규모의 아파트 단지 입구다. CCTV 영상을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서 납치 사건이 벌어졌고, 살인으로 이어졌다. 범행시간이 자정에 가까운 무렵이었다고는 하나 서울에서도 상시적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하니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목격자의 112 신고가 신속히 이뤄졌는데도 피해를 막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며 시민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납치법들은 피해자를 차에 태원 후 대전 인근에 도착할 때까지 차를 바꿔타지 않았다고 한다. 좀 더 일찍 수배령을 내렸다면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늦었다고는 하나 범행 발생 1시간 10분 만에 일제 수배령이 내려졌는데 범행 차량이 어떻게 검문을 피해 대전까지 갈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납치, 감금 사건만 해도 서울 강남에서만 최근 2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헤어진 여자 친구를 강제로 차에 태워 경기 김포시 자기집에 데려가 감금한 남성이 붙잡혔다. 2월 말엔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피해자를 폭행한 후 납치한 2명이 체포됐다. 민생 치안이 불안하다.

나경택 논설고문/ 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나경택 논설고문/ 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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