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수단 행정수반의 코만도 쿨 총리 일행은 이 외에도 계획도시를 기획해서 건설해달라고 주문하는 등 우리가 해야 할 프로젝트가 너무 많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가진 것이라고는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가 뉴수단을 개발할 일들 중 가장 먼저 도로건설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했다.

도로개설공사는 노선이 정해지면 노반(路盤)에 깔 기층재와 보조 기층재로 사용할 골재생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석산을 개발하여야 하고, 나아가 수자원 개발을 위하여 댐(Dam) 건설과 지하수를 개발하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뉴수단의 몇 군데를 돌아본 결과 허허벌판의 넓은 땅들이 모두 황무지 상태였으므로 잡목을 베어내고,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도록 농지로 전환시키는 문제도 검토해볼 가치가 있었다. 우선 그들에게는 식량생산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휴 인력을 투입해 국민이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차츰 시급한 문제가 해결되면 그들의 국민이 사용할 공산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어 생활필수품을 자체 생산 공급하고, 기술과 기능을 교육시켜 인력을 기술화하는 등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향상시키는 일들도 시급했다.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프로젝트의 순서와 업종 간의 연계성을 검토한 후 실행에 옮겨야 했다.

물론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기성금(공사대금)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제 때에 수령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러한 문제는 전혀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미국의 원조를 비롯해서 독립 후 세계은행을 통해 차관을 얻어 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서 이를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사업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뉴수단 정부요인들과 대화 중 K사장은 이곳에 도착했던 날 둘러보았던 고아들의 실상에 대해 가슴이 아팠던 것을 회상하면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K사장은 이들에게 도와주고자 하는 물건들을 미리 우리와 검토해 보았었다.

어린 고아(학생)들이 사용할 연필과 노트, 신발(운동화와 슬리퍼), 의류 그리고 컴퓨터 등을 컨테이너에 실어 제공해 주기로 했다.

영부인과 총리 등은 매우 기뻐했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영부인의 말에 의하면 때로는 가끔 아이들이 먹을 양식이 떨어져 없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대통령)이 있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까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서 먹을 것을 구해 실어 온다고 했다.

이곳에는 매우 큰 화물차 한 대가 있었는데, 이 자동차가 바로 케냐에 가서 먹을 것과 기타 생필품 등을 실어오는 운반차량이었다. 이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차량은 영부인이 구입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의식주 생활 중 먹을 것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궁핍한 생활이니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K사장의 전언에 의하면, 영부인은 그 화물자동차를 직접 자신이 운전한다고 했다.

이곳 뉴수단 나콰톰에서 국경을 넘어 케냐의 나이로비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는 소요시간이 약 10시간 남짓 걸린다고 했다.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하기도 하지만 대통령인 남편과 하루 정도 같이 지내다 돌아오고 싶어도 굶고 있을 고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한 시도 지체할 수가 없어서 바로 밤늦게라도 돌아온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영부인답게 궁핍하게 생활하고 있는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고, 특히 전쟁으로 인하여 부상당한 퇴역군인,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미망인과 전쟁고아들을 돌보고 있으니 First lady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박사 엔지니어(케냐 대사)는 의약품이 없어서 간단히 치료하면 완쾌될 수 있는 상해나 질병에 걸려도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손목이 건들거리는 사내(부상당한 퇴역 군인)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전쟁 중 총알이 손목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하지만 소염제나 항생제는 물론 소독약 하나도 없어서 치료를 못해 살이 썩어 들어갔고, 뼈가 튀어나오는 것 등을 방치해 둔 결과라고 했다.

한마디로 비참한 모습들뿐이었다.

- 49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박정봉 칼럼니스트(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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