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 집권에서 나타난 병폐로 결국 부하 직원의 총격으로 서거했지만, 그는 가난한 국민의 소득향상과 생활개선을 위해 헌신한 진실한 사람으로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공헌한 지도자였으며, 개인적 부(富)를 전혀 축적하지 않은 깨끗한 지도자였다고 말해주었다.

따라서 나는 당신네도 뉴수단 국가를 이끌어 갈 당신을 포함하여 모든 지도자들이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당신과 우리가 약속한 비지니스도 모두 신뢰를 갖고 진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모두 인정한다고 했고, 표정에서 일단의 진실함이 엿보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새마을 운동을 뉴수단에도 접목시켜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이어 어느 정치학자가 이야기한 “No solution, No problem”을 말해주었다.

이 말은 나폴레옹이 이야기한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쿨 총리는 독백으로 두어 번 되새겼다.

나는 당신을 포함한 뉴수단의 모든 위정자들이 그러한 정신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경제개발사업에 임한다면 반드시 당신네 나라도 부강한 국가를 이룩할 것이며, 국민들도 행복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그는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어디선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엔테베공항에서 우리를 태우러오는 경비행기인가 보다.

이내 19인승 경비행기가 공중을 한 바퀴 선회하더니 프로펠러 회전력으로로 먼지를 일으키면서 사뿐히 내려앉아 우리가 서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비행기는 처음에 우리를 이곳에 올 때 태우고 왔던 Eagle air 항공사의 비행기였는데, 당초 약속보다 늦게 도착해서 이곳 시간으로 오후 2시였다.

기장 등 승무원들도 모두 같은 사람들이었다.

영부인을 비롯한 이곳 나콰톰 사람들과 작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내로 탑승했다.

이륙 후 우리는 기내에서 나콰톰 마을을 내려다보았으나 집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에 정착촌을 만들 때부터 북부 수단의 폭격을 피하고자 나무 밑에 집을 지었고, 또 주위에도 많은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위장이 잘 되어 있었다.

우간다 엔테베공항으로 되돌아오는 상공에서 내려다 본 지상은 갈 때와 마찬가지로 나일강 상류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간혹 야산의 구릉지가 보이긴 했으나 대부분 노년기의 야산 지형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지상의 수목은 매우 수려해 보였으나 모든 나무들이 아프리카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가시가 돋아나 있는 나무들뿐이었다.

1시간 40분 정도 비행 끝에 이곳 시간으로 오후 3시 45분경 우리는 엔테베공항에 다시 안착했다.

무스타파의 회사 직원들인 무하마드와 몬슈가 마중 나와 반겨주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항의 경우라면 할 수 없을 텐데, 당초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들은 입국수속장 안에까지 들어와서 입국수속을 도와주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온 우리는 코만도 쿨 총리 일행과 이번 출장의 마지막 작별을 했다.

그동안 우리와 같이 지낸 정이 많이 쌓였는지 그들은 악수와 함께 포옹을 하면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공항에서 캄팔라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에 시내에 다다르자 자동차가 너무 많아 홍수를 이루어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곳의 교통난은 도로가 협소한데다 자동차와 사람이 뒤엉켜 다녀서 더욱 심했다.

평상시 대략 1시간 정도면 올 수 있는 거리를 2시간 남짓 걸려 저녁 6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다.

정말 너무 피곤했다.

숙소에는 청소를 해주는 아가씨가 그 때까지 돌아가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세탁물을 빨아서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팬티까지도 다리미로 다려 놓았다.

늦은 시간에 저녁밥을 지어 식사를 한 후 피곤한 탓에 곧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고, 국내의 집안 일이 궁금해서 밤 11시 30분경 전화를 걸었더니 아내가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한국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기에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었나 보다.

아내는 원래 내가 멀리 외국에 나가 비지니스 출장 중일 때는 집안에 일이 생겨도 가능한 한 연락을 취하지 않는 성품이다.

- 52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