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천안함이 초계임무 수행도중 북한 해군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한 사건이다.

피격 이후, 인근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포항급 초계함인 PCC-778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해경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하였다.

이후 수색작전 중 3월 30일 한주호 준위가 잠수병으로 순직하고, 4월 3일 천안함 수색을 돕던 쌍끌이 민간어선 98금양호가 상선과 충돌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어 직/간접적으로 1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였다.

천안함은 제1연평해전에 참가했던 함선이기도 하며, 실종·사망한 승조원 46명 중에는 제2연평해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던 박경수중사도 포함되어 있다

5월 20일 대한민국 국방부와 대한민국 정부는 침몰 당시 북한과 관계없다 발표하였지만, 이후 그 원인에 대해 민군합동조사단 및 국제조사단의 조사를 거쳐 '북한 연어급 잠수함의 어뢰 공격'임을 확인하고 북한을 규탄하였다. 북한군에 대한 초계 대응에 실패하여 북한 잠수정이 남한의 바다에 침투하는 것을 허용해버렸고, 그 결과 어뢰 공격을 당해 침몰했다는 것이다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은 가스터빈실 좌현 하단부에서 음향자장복합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천안함 사건은 2010년 4월 26일 서해 영해 인근에서 전함 천암함이 두동강난 채 침몰한 사건으로. 합동조사단은 북한이 어뢰를 발사하여 천안함을 침몰시켰고 46명의 승조원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남한 정부는 합동조사단 발표 이후 북한에 책임이 있음을 맹비난했다.

어뢰 폭발로 발생된 충격파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 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고,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여 있었다.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 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가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들었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기둥을 관측했다는 진술내용 등이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현상과 일치하였다. 또한 사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는 등 충격파 및 버블 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 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는 동일 폭발원이었으며, 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한다.

몇 차례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대략 좌현 3미터의 위치에서 총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사단이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어뢰를 활용한 공격에 제한을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던 중, 합동조사단은 침몰해역에서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부인 프로펠러를 포함한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을 수거하였다.

이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이라는 한글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도 일치한다.

이상과 같이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점은 공식 조사에 참여한 미국·영국·스웨덴·호주 4개국 전문가들이 모두 동의하였다

천안함 사건은 천안함 피격 4개월여 전인 2009년 11월 10일에 벌어진 대청해전에서도 북한이 연이어 패배하면서 기획된 보복작전이다. 북한은 세 차례의 서해교전에서 수상함을 이용한 공격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점을 절감하고, 이후 기습을 노릴 수 있는 잠수정에 의한 어뢰 공격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이야기이다.이러한 증거는 이후 북한의 매체에서 반드시 보복 하겠다는 언론과 군수뇌부의 보도와 발언, 그리고 현장에 급파된 속초함의 레이더에 북한의 고속 잠수정이 레이더에 포착된 사실로 입증 이된다.

천안함이 피격되고 함장 최원일 중령은 함장실에 갇혔다.이 상황에서 부함장이였던 김덕원 소령, 작전관 박연수 대위,부사관등 부하들이 함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최원일 함장을 구출했다.함장실을 빠져나온 함장은 상부에 어뢰공격을 받은 것 같아 침몰하고 있다며 보고하였고 남은 승조원들을 이용해 구출조를 편성, 침몰하지 않고 떠 있던 함수 여러 곳을 수색해 함수에 남아 있던 승조원 59명 중 1명을 제외한 58명을 구출, 함외로 올라와 구조를 기다렸다. 이후 도착한 해경 경비정에 차례로 승함, 함장이 마지막으로 퇴함하면서 이때까지 살아 남아있던 승조원 전원이 구조되었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보수 정권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이명박 정권은 사건 발생 이후 "어뢰로 침몰했다고 속단하지 말라"는 주문을 하였으며 명백한 사실을 바탕으로 진행하라는 발언을 했고, 합동 조사 및 어뢰가 발견된 이후에서야 북한 소행이라는 신중한 결론을 도출하였다

초기부터 해군은 어뢰 피격이라고 판단하였는데 청와대에서는 파도에 부러졌다는 등 계속하여 어뢰 피격을 부정 하였다. 이후 1970년 백령도 기뢰 부설 책임자였던 김모 씨의 자기가 매설한 기뢰가 "한 번 우연히 폭발한 적이 있다"라는 주장이 문서로 청와대로 전달되었다. 이에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정정길 대통령실장,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동조하였다.

이러한 참모들의 의견을 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등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들은 기뢰폭파설 쪽으로 기울어 졌다. 이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이 넘도록 해군의 어뢰 피격설은 부정되었고, 청와대에서는 기체피로설과 기뢰폭파설만 슬슬 흘렸다. 당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차장이었던 오병흥 장군에 따르면 당시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위해 접촉하고 있어 청와대에서 어뢰설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오병흥 장군이 조사후 어뢰 공격이라는 보고를 하자, 국방장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있으니 어디에도 그 보고서를 주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010년 5월 4일 "경계근무 중이던 우리 함정이 기습받았다는 데 대해 안보 태세의 허점을 드러냈고 소중한 전우가 희생됐다는 점에서 통렬히 반성하는 의미로 천안함 피격사건이 있었던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6월 중앙일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천안함의 폭침 징후가 나타났어도 군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당시 국군 기무사령관이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북의 잠수정 공격이 예상된다는 보고를 천안함 피격 수일전에 지휘보고 하였음에도 너무 걱정 하지 말라는 답만 돌아 왔다고 한다.

2010년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인양되었으며, 24일에는 함수가 인양되었다. 1차 현장 조사 결과 내부 폭발 가능성과 피로 파괴는 가능성이 없음이 확인 되었다. 가능성은 외부의 요인. 즉 기뢰나 어뢰냐 하는 것뿐이었다. 군은 처음부터 북한의 소행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후 북한의 어뢰 추진체가 민간어선의 딸끌이 그물에의해 발견

되고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반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북한 잠수정에 의한 어뢰공격"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4일 천안함 피격사건을 북한의 군사적 도발로 간주하고, 이후 남북관계가 바뀔 것임을 예고하였으며 구체적으로는 북한 선박의 남한 해역에서의 해상교통로 이용 및 남북교류를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5.24 조치)

상기 사실들로 미루어, 천안함 피격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것은 보수정권에서 초기에 어뢰 폭침을 부인했다는 등(단지 신중한 입장이었다), 보수정권에서 북한에 뒤집어 씌웠다는 등 음모론을 주장하는 세력이라고 판단 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 수감된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천안함 용사들을 찾아 추모해왔다. 수감 당시에는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참모진들에게 대신해서 참배를 해달라는 당부를 했고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참배가 매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사면 이후 첫 공식일정도 2023년 3월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천안함46용사의 묘역을 찾는 것으로 하였다.

이러함에도 민주당 혁신위원장(사퇴)과 민주당의 수석 대변인의 천안함 펌훼 발언과 좌초한 사고라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당대표의 공식적인 사과와 입장을 듣고자 하였으나 묵묵부답이다. 이런 한 더불어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공식입장 유보는 천안함의 사건을 아직도 우리 정부가 북한에 뒤집어 씌웠다는 입장을 견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더이상의 북한에대한 온정 주의와 천안함 호국 영령과 유족들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아야 할 엄중함이다.

                   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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