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는 12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가 추진하는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을 중단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국민여론조사를 근거로 방통위에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를 권고했고, 방통위는 이를 위한 시행령 개정에 착수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수신료 분리 고지로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지난 4월 13일 국회에서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이 회견을 열어 정부의 KBS 수신료 분리징수 움직임을 성토했다. 그런데 이 단체는 홈페이지에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시청자 주권을 되찾기 위해 수신료 분리 고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1700여 시청자와 함께 KBS와 한국전력에 분리 고지를 신청하고, ‘분리 고지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이 단체는 2015년에 소송을 냈고, 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항소와 상고를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염원하던 수신료 분리 고지를 윤석열 정부가 하겠다는데, 드디어 시청자 주권을 찾게 됐는데, “당장 중단”을 외친다.참 이상한 일이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이렇게 설명했다.“KBS가 TV 수신료를 징수할 때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공사가 송출하는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 시청자에게 강제 납부하게 하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 앞서 2014년에도 같은 당의 노웅래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내며 비슷한 주장을 했다. 이토록 야당 의원들이 원했던 수신료 분리 징수를 정부가 하겠다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실에 항의서를 보내며 언론 방송 장악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한다. 같은 일인데 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불의가 되나.

1994년 KBS가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병과하는 결정과정에 약간의 논란은 있었지만, 정작 국민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그러던 KBS가 그로부터 30년 지난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KBS 수신료 징수 수탁제도를 금지하고, 자율 납부 방식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수신료 수입은 현재의 절반에도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강력한 대체재들이 늘어나면서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의 정당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국가정책에 비교적 순종적이라고 평가받는 일본에서조차 NHK 수신료 징수율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수신료 제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영국 BBC 역시 대체 재원을 모색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공영방송 재원으로 인식됐던 수신료 제도가 수명을 다해간다는 느낌이다. 특별부담금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강제징수라 할 수 있는 KBS 수신료 제도가 국민으로부터 동의받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공영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묶어 두는 나라는 흔치 않다. 그리스·파키스탄·튀르키에·이탈리아 등이 이 방식을 따른다. 공영방송 모델을 만든 영국도 수신료(TV Licence)는 따로 징수한다. 연간 159파운드(약 25만원)로 연 3만원인 한국보다 한참 비싼 것 같지만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수신료엔 BBC를 포함, 모든 지상파 채널의 ‘다시 보기 서비스’ 등이 포함돼 있다. 스마트TV나 PC로 이들이 만든 콘텐트를 보더라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수신료를 내도 KBS 콘텐트를 다시 보려면 추가 비용이 든다. 지상파 3사가 합작으로 만든 OTT 웨이브의 최저 요금제(7900원)를 택해 본다고 하면 연간 최소 12만4800원이 든다. 게다가 KBS 2TV는 광고도 한다. 가성비가 좋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은 대선에서 승리한 정파의 전리품이 되어 버렸고, 수신료는 정권과 공영방송을 연계하는 일종의 매개체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공영방송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완벽한 호위무사가 될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렇게 구축된 현재 공영방송 체제는 정권 교체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력과 상업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공영방송 이념이 국민에게 액면 그대로 들릴 리 만무하다.

윤석열 정부의 수신료 제도 개선 의지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행태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처음으로 집권 여당이 수신료 인상을 포기하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20여 년간 반복된 패턴이 있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지금의 여당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지금의 야당이 분리 징수가 옳다고 했다. 전기요금 고지서에 수신료를 넣어 함께 내도록 하는 게 부당하다고 시차를 두고 여야 모두 주장했다. 등장인물만 바뀌는 식상한 리메이크 드라마를 윤석열 정부는 계승하지 않겠다고 한다.

KBS를 비롯한 우리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지도 않고 방만한 조직 이기주의식 경영으로 국민들의 큰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KBS와 구성원들의 뼈를 깎는 반성과 개선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KBS 안 보는 사람이 점점 는다. 맘에 안 들어서, 볼 게 없어서, 다른 데 볼 게 많아서,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운 공영방송이 아니라서. 이유가 많다. 이런데도 전기요금에 묶어 강제로 내도록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지금의 야권도 과거에 그렇다고 했다. 이것을 윤석열 정부가 고치려고 한다. 대관절 왜 안 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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