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솜방망이’ 처벌…미·대만 ‘스파이법’ 중벌

전경련, “첨단기술 해외 유출 엄벌” 의견 제출

기술 정보와 영업비밀을 국내외 경쟁 회사에 빼돌리는 산업스파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부(國富) 유출이 우려되고 있다. 최첨단기술 확보는 기업은 물론 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고급인력 양성과 스카우트,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의 경우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자동차·조선 등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데 우리의 ‘최대 자산’인 첨단 기술과 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단체로는 처음으로 첨단기술 해외 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지금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에서 낙오할 게 불 보듯 훤하다는 위기감에서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 유출 범죄는 93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반도체 등 핵심 전략산업 관련 기술이었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이 입은 피해액은 2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으로의 유출이 60% 정도로 가장 많다. 그 뒤로는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순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복제한 반도체 공장을 그대로 중국에 설립하려 한 전 삼성전자 상무 A씨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지고, '플라스틱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보상 회로' 등 국가 핵심 기술 자료를 퇴사 직전 인쇄한 뒤 중국 기업으로 이직한 사례도 있다. 대부분 내부 직원 소행이 많은 편이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이젠 한 술 더 떠 한국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생태계’를 통째로 가져가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또 최근 '배터리 굴기(堀起)'를 외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선 중국이 한국 고급 인력 스카우트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 업체는 국내 업체보다 3∼4배 더 많은 급여를 주겠다고 제안하면서 적잖은 고급인력이 중국업체로 이직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처벌 수위가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최첨단 3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 공정 관련 기술 기밀을 밖으로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미국 인텔로 이직을 준비하던 중 사진을 찍어 확보한 3나노 공정은 세계에서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두 기업만 양산에 성공한 기술이다.

양형 기준과 실제 적용에 괴리가 큰 것이다. 한국은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국가 핵심기술 해외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 그 외 산업기술 유출 시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미흡한 실정이다. 2015년부터 8년간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65명이다. 이 가운데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이 292명(80%)이고, 실형을 산 사람은 73명(20%)에 그쳤다. 미국은 ‘경제 스파이법’을 통해 국가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되면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하고 있다. 피해액에 따라 징역 30년형 이상까지도 가능하다. 벌금은 최대 500만달러(약 65억원)다. 대만은 지난해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군사·정치 영역이 아닌 경제·산업 분야 기술유출도 간첩행위에 포함시켰다.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자 안보 자산인 전략 기술을 훔쳐 국외로 팔아넘기는 것은 중대 범죄이자 매국적 반역 행위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각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기술탈취 범죄도 늘어날 공산이 크다. 대법원은 이번 기회에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간첩죄 적용 등 양형기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 초격차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지켜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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