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중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라 종업원도 중국여자들이었지만 먼 타국에서 동양인을 만난 것이 반가웠다.

J과장은 우간다에 오랜 기간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동양인을 알아두는 것도 정서상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맥주를 곁들여 음식을 시켜놓고 한참 먹고 있을 즈음 K사장으로부터 우리가 우간다에 와서 처음 갔었던 노천 맥줏집으로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곳은 바로 콩고 여대생을 만났던 장소로 걸어가도 금방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기리였다.

우리가 장소를 옮겨 노천 맥줏집에 왔을 때는 벌써 거의 모든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저녁이면 술을 무척 즐기는 것 같이 느껴졌다.

K사장과 무스타파도 지난번보다 술을 좀 더 마셨는지 얼굴에 취기가 올라 있었다.

무스타파는 당뇨가 있어서 담배도 끊고, 술을 조금 밖에 마시지 않는다고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웠다.

그는 오늘도 별로 기분이 썩 좋지 않은지 나에게 담배 한 개비를 달라고 했다.

그의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사람으로 에리트레아(Eritrea)에 부인 2명과 자녀 4명을 두고 있으나 현 정부와 불편한 관계로 들어갈 수 없어서 헤어져 살고 있었다.

무스타파는 나에게 그동안 이곳에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며 위로해 주면서 자신의 사업성에 대한 진실성과 장래의 계획을 강조해서 말했다.

그는 과거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어서 한국의 술을 마셔보았는지 진로주조 회사가 매우 큰 기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한국의 의료시설이 매우 좋으므로 당뇨치료를 해서 완치되기 바란다고 위로해주었다.

무스타파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스타파는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나에게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나는 주로 듣기만 했다.

나도 맥주를 아주 거나하게 마셔서인지 취기가 몰려왔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목에서 처음 이곳에 와서 만났던 콩고 여대생을 또 만났다.

그녀는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하더니 다가와서 팔짱을 끼며 처음 보았던 날 왜 나중에 만나자고 해놓고 도망갔느냐고 묻고, 오늘은 꼭 그냥 가지 말라고 했다.

그녀가 따지듯이 말을 했지만 웃으면서 교태를 부리는 동작으로 나를 유혹했다.

콩고 여대생을 적당한 핑계로 돌려보내고 자리로 돌아와 앉아 일행과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이 깊어지자 밤공기가 차가워져 주석(酒席)을 정리하고 일행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에 비가 왔는지 베란다 바닥이 약간 젖어 있었다.

출국준비를 위해 짐을 챙겼다.

나는 가져온 타월 몇 장과 의약품 등을 이곳에 남아 있는 동료들이 필요할 때 사용하라고 남겨두었다.

가능한 한 짐을 줄이긴 했지만 당초 가져온 대형 여행가방(luggage) 두 개는 그대로였다.

오후 3시 출발 비행기였는데도 이곳에서는 오전 11시에 출발해야 한다면서 K사장과 무스타파 일행이 일찍 자동차를 가지고 왔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출국수속이 늦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이곳에 남아 있을 사람들까지 모두 공항으로 함께 나와 주었다.

나와 같은 자동차에 탑승한 K사장은 내가 좀 더 이곳에 머무르면서 석산개발을 위한 다음 날 우간다 건설부장관과의 미팅을 하고, 현장조사도 해주었으면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떠나게 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번 기회에는 떠나야 하기에 다음 날을 기약해 주었다.

석산개발은 건설용 골재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로 발파에 의하여 암반을 채취한 후 잘게 부숴(crushing)서 사이즈별로 목적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K사장은 현재 크러싱 플랜트를 발주해놓고 있다고 하면서 발파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우간다를 꼭 방문해달라고 나에게 간곡히 주문했다.

공항입구 도로에 이르자 군인들이 차에서 내리도록 하고, 차와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했다.

혹시 주요 인물이 엔테베공항을 출입하는지 매우 엄격하게 검문을 했다.

이윽고 공항에 도착하자 이곳에 남아 있을 일행과 아쉬운 작별을 한 다음 검색대 통과 후 짐을 부치기 위해 데스크를 찾아가 체크해달라고 공항 여직원에게 비행편 티켓을 내밀었다.

그러자 공항 여직원은 아무런 상황 설명도 없이 나중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다른 탑승객들은 모두 체크해 주는데, 유독 우리 일행만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닌가?

박정봉 칼럼니스트(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박정봉 칼럼니스트(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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