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攻守만 바뀔 뿐 선거 전후 얘기 상반

불체포특권 포기가 아니라 ‘합리화’가 관건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가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특권 내려놓기의 핵심으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포기가 꾸준히 언급돼 왔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소속 의원의 구속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 국회’를 더는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동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 처리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으라는 당 혁신위원회의 1호 혁신안을 지도부가 수용한 결과다.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사건과 ‘코인 비리’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 사건으로 의사 결정 시스템을 포함해 당내 민주주의에 구조적인 문제가 노정됐기에 혁신위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혁신위는 “민주당 의원들이 ‘떳떳하게 심판받겠다, 사법부 판단을 신뢰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당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며 결정 배경을 설명한 게 뒷받침한다. 실천된다면 긍정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당내 반발이 만만찮다. 비명(비이재명)계에선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인사임을 들어 혁신위가 돈봉투 사건을 빌미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지렛대 삼아 친명(친이재명) 강성 지지층이 요구하는 ‘대의원제 폐지’를 실현하려는 포석을 깔고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대의원제 폐지를 통해 이재명 대표의 강성 팬덤인 개딸(개혁의 딸)들을 앞세워 총선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확실한 당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이디.

국회의원의 특권이 헌법에 명시돼 있으므로 헌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는 건 그동안 불가능했다. 물론 특권 폐지가 아니라 특권 포기는 언제라도 가능했겠지만, 여야 모두 공수(攻守)만 바뀔 뿐 선거 전의 얘기와 선거 후의 얘기가 달라져 지금도 쟁점이 되는 이유다.

관건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윤리적 기반 위에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수사를 둘러싼 방탄국회 논란이 특권 폐지 논쟁으로 번졌고, 이제는 정치권을 넘어서 국민들 사이에도 국회의원들의 특권 폐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대통령을 탄핵으로 파면시키고, 이어서 형사처벌까지 받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야당 대표라고 대통령보다 더 특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시대착오적이다.

더욱이 최근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상태여서 정치개혁을 앞세운 국회의원들의 주장까지도 불신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국회의원 정수 확대 주장이 사실상 무산된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들의 특권에 대해서도 국민들 사이에 회의적 시각이 팽배해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민주화돼 있다는 영국이나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주요 선진국들이 여전히 불체포특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비록 다수당의 오남용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이 제도를 폐지했을 때 특정 정권이 수사권을 오남용해 야당을 억압하고, 의회를 파행으로 몰아갈 경우에 발생할 위험성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방향은 불체포특권의 포기가 아니라 불체포특권의 합리화에서 찾아야 한다. 방탄국회를 막기 위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불체포특권의 기능을 살리는 가운데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이재명 대표의 사례처럼 다수 측근들이 구속되는 등 ‘비리 덩어리’ 의혹을 받고 있는 경우 떳떳하게 검찰에 출두해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당위가 그렇다. 매사 제도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 운용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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