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인데도 모든 물건이 비싸보여서 가격이 붙어있지 않은 것은 좀 싸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10개들이 볼펜 한 케이스를 가리키며 꺼내 포장해 달라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US 457$이라고 해서 기가 막힐 정도였다.

그렇다면 볼펜 한 자루에 45.7 달러인 셈인데, 1달러 당 당시 환율로 1,250원으로 계산해보니 약 5만 7천여원이나 됐다.

나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사지 않겠다고 말하고 탑승시간이 가까워져서 우리 일행이 있는 탑승 Gate로 갔다.

한참 앉아 있다 보니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뿔사! 내가 출장 다닐 때마다 항상 들고 다니던 007 가방이 손에 들려있지 않았다.

볼펜을 사려고 했던 진열대 위에 놓고 그냥 온 것이다.

황급히 달려갔으나 이미 가방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점원에게 조금 전에 여기에 둔 가방을 찾으러 왔는데, 혹시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분실물센터로 보냈다고 했다.

물어 물어서 겨우 분실물센터를 찾아갔을 때 남자 직원이 어디를 경유해서 오는지 내 가방을 들고 막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보자마자 이 가방이 내 것인데 찾으러 왔다고 했다.

남자는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정확히 들어 있는 물건을 말하고, 내 것이기 때문에 단 번에 가방의 키 번호를 조작해 열 수 있다고 했더니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가방을 열어보니 들어 있는 물건들이 정확히 맞고, 단 번에 키번호를 맞춰 여는 것으로 보아 주인인 것을 알아차린 남자는 이번에는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여권은 또 캠코더 가방 밑바닥에 넣어 두었는데, 일행에게 맡겨놓고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어찌하란 말인가?

이만저만 해서 또 갔다 오기엔 탑승시간이 촉박하다고 사정조로 이야기하자, 그는 분실물 대장에 서명을 하게 한 다음 가방을 내주었다.

가방 속에 별로 중요한 물건은 없었지만 나와 대략 15년을 같이 한 때 묻은 가방으로 출장 다닐 때마다 들고 다녀서 정이 많이 들었고, 휴대하고 다니기에 편리한 007(Dunson) 서류가방이다.

새벽 2시 30분에 비행기는 일본 간사이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기내에서 우리나라 여승무원을 다시 만나 반가웠고, 포도주를 한 잔 마신 후 잠을 청했으나 자리가 불편한 탓인지 뒤척거리기만 했다.

그런데다 앞자리에 탄 외국인 3명이 모두 흑인이었는데, 냄새가 몹시 나서 더욱 지겨웠다.

10일 오후 4시 30분경 일본의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우리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Transit 방향을 보면서 찾아갔으나 창구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물어서 겨우 찾아갔더니 다른 항공편 개찰직원이 전화를 걸어 확인해 주었다.

이곳 탑승구에서 우리 일행이 한국으로 들어갈 항공권 개찰을 하지만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관계로 다른 항공편을 개찰중이라면서 우리가 탑승할 항공편 직원이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탑승한 3명의 일행은 밤 9시에 간사이공항을 출발해 현해탄을 건너 10시 3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밖에 나오니 열흘 전 이곳을 떠날 때보다 날씨가 무척 추웠다.

공항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를 찾으러 갔다.

자동차는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대학동문 덕분에 무료주차가 가능했고 찾기도 편리했다.

아버님이 입원해 계시는 병원으로 바로 가려고 했으나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일 오전에 찾아가 뵙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일은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지역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일익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아가 국익을 선양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개발은 아직 불분명하고, 탐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공사와 석산개발은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고, 바로 수익성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앞으로 본격적인 아프리카 사업진출을 위해 다시 출국할 것을 기약해본다.

이것으로 출장기행문 Archive를 맺으면서 이어서 후기(마지막 회)로 아프리카 진출시 알아두어야 할 점 몇 가지를 추가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다음 회에 후기를 끝으로 본 기행문 아카이브를 맺습니다.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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