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 때문일까. 불쾌지수와 분노지수도 덩달아 오르는 것 같다. 일면식도 없는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상자를 낸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1일 신림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이어 지난 3일 분당 서현역 부근에서 인도로 차량을 돌진해 행인을 들이받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해 1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쇼핑몰에서 평온한 일상이 무참히 짓밟혔다. 총기 소지가 합법화된 미국에서만 테러가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가 빈번해지면서 출퇴근길이, 밖으로 외출하는 평범한 날들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나 10대와20대들의 살인예고 SNS가 판을 치고들 있는 실정이다.

공공 안전 해치는 무차별 범죄

‘괴물’ 막을 지속적인 대책 시급

내부 분열, 사회 양극화 조장한

‘정치의 실패’ 가장 큰 책임 져야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돈이 최우선 가치가 돼버린 현대사회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대중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20대 여성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정유정(24)은 검찰 조사에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했다고 한다. 평소 사회적 유대가 전무했고, 고교를 졸업한 후 직장을 다닌 적도 없었다. 지난달 신림역 인근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된 조선(33)은 “내가 불행하게 살기 때문에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비슷한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소년부 송치 전력이 14건에 전과 3범인 조씨는 어렸을 때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서현역 사건의 범인 최원종(22)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뒤 일반고를 자퇴하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사회에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세상과 단절된 채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키워온 ‘외로운 늑대’들이 시한폭탄처럼 똬리를 틀고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 말대로 이런 식의 무차별적 범죄를 막기는 쉽지 않다. 특정한 동기 없이 막연한 분노나 정신질환 등으로 범죄가 촉발되기 때문에 사전 탐지, 예방이 어렵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플랫폼뿐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분노 게이지’가 높은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 또 어떤 유형의 분노 범죄가 나타날지 걱정이다.

불안한 여론 확산에 여당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같은 엄벌주의를 들고 나왔다. 야당은 잇단 강력 범죄를 막지 못한 정부 쪽에 책임을 떠민다. 사회적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그랬듯 마치 자신들은 책임이 없는 듯 말이다. 하지만 혐오와 극단적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정치권 행태를 보노라면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분노 게이지를 높이는 주범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증오범죄,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는 배경에 사회 양극화가 꼽히는데 정치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를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사형제를 재개하거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도입 등 묻지마 범죄에 대한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예방이 더 시급하다. ‘외로운 늑대’를 만든 것은 우리의 탐욕과 이기주의다. 끝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더 높게 욕망의 바벨탑을 쌓으라는 무자비한 사회,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무관심한 사회, 이를 투영하고 부채질하는 미디어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누군가 한 번이라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세상을 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우울감을 겪는다. 삶의 매 순간이 희열이고 행복이 아니라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암흑과 절망의 긴 터널 끝에는 한 줄기 빛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타인과 끊임없는 비교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것, 내리쬐는 한 줄기 햇살에 감사할 수 있다면 고통도 견디기가 한결 수월해질 터다.가정과 사회,학교, 종교계,정치의 역할이 희망이 되어야 한다.

              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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