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라’를 자임해온 한국이 총체적 치안 위기에 빠졌다.

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경찰 명의 계정의 칼부림 예고 글까지 올라왔다. 지난달 서울 신림역을 시작으로 성남 서현역 등지에서 흉기 난동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가 ‘묻지마 범죄’에 무방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4만 경찰은 특단의 의지를 가지고 국민의 일상을 안전하게 지켜나가겠다”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초유의 ‘흉기 난동 범죄 특별치안활동’까지 선포했다. 도심에 장갑차와 경찰 특공대를 배치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신림동 공원 부근 등산로에서 최모(30)씨가 출근하던 교사를 호신용 기구인 ‘너클’과 목졸림으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또 벌어졌다. 성폭행을 노린 살인 범죄다. 칼부림이 일어난 신림역에서 2㎞도 안 되는 거리다. 경찰은 무차별 살인 현장 인근에서 대낮에 벌어진 살인 범죄를 막지 못했다.

모든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련의 범죄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경찰청이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소속 순경 정원은 9535명이지만, 현재 근무 인원은 절반 정도인 4909명에 불과하다. 현장 활동에 투입되는 경장과 경사도 정원을 못 채웠다. 치안 최일선인 지구대·파출소 인력 역시 크게 부족하다. 이에 비해 간부인 경감은 정원 2020명에 현재 인원은 5059명, 경위는 정원 3821명에 현 인원은 8456명에 이른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사 이하는 태부족인데 내근과 지휘를 하는 간부는 넘쳐나는 ‘직급 인플레’가 뚜렷하다. 이러한 경찰은 기형적 구조를 방관해온 지휘부의 무책임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간부의 비중보다는 현장 경찰의 비중을 늘려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치안 업무 등을 맡아온 경찰관이 수사 업무로 대거 옮겨간 것도 치안력 약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올 상반기에만 기동대 인원 1009명이 수사 부서로 배치됐다니 그만큼 치안에 허점이 커지는 셈이다.

경찰은 지난 4일부터 범죄가 우려되는 다중밀집장소 4만7260개소 선정, 지역경찰・형사・기동대 등 28만2299명 배치해 특별치안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찰력 동원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온다. 한 경찰관은 “14만 경찰을 다 동원해도 교대근무와 내근 등 고려하면 한번에 나갈 수 있는 인력은 2만명뿐이다. 일상 치안 대응도 해야하는데, 경찰 인력만을 투입해서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 치안대책 패러다임 근본 전환을"

사후 대응보다는 예방 중심으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 7일 회의에서 “갈수록 사건에 사후 대응하는 것들로 정책의 중심이 변질되는 것 같다”며 “치안정책 방향을 예방 중심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보순찰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 지역사회 경찰의 ‘커뮤니티 폴리싱’이 좋은 예”라고 지적했다.지자제의 자치 경찰을 활성화 하고 지역주민에 의한 취약지 거부활동의 일환으로 방범순찰대 활동도 적극 활용하는 역량이 필요한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묻지마 범죄’에 대해 치안 역량 강화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경찰의 치안 역량은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어렵다. 경찰은 지금부터라도 직급별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고 간부도 현장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민 안전이 무방비로 방치된 실태가 드러난 만큼 경찰 인력을 치안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혁신에 나서야 한다.

                   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