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비교정치학 박사한국정치심리공학회장
백병훈
비교정치학 박사
한국정치심리공학회장

 

금년 820일은 동아건설이 탄생한지 78년이 되는 날이다.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되고 닷새 뒤의 일이다. 그리고 39년 뒤, 동아는 섭씨 40도가 넘는 열사의 대륙에서 사막의 모래폭풍과 도처에 널 부러져있는 위험요인을 극복하고 세계 토목공사 역사상 전설과도 같은 공사를 기적처럼 해냈다. 아프리카 남부 사하라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 올려 북부 지중해 연안 대도시에 물을 공급하는리비아대수로공사(大水路工事)”였다. 1984년의 일이다.

 

사하라 사막에 펼쳐진 기적 같은 신화

이 공사에 무려 550만대에 달하는 건설 중장비가 동원됐다. 최정예 동아건설 직원과 21개국 5,000명의 근로자가 투입돼 연인원 354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달라붙었다. 동아가 현지 제작한 지름 4m, 길이 7.5m, 한 개의 무게가 75톤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송수관은 독일제 트레일러에 실렸다. 60대로 편성된 이 수송단은 동아가 사막에 미리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사막을 건너고 또 건넜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이동하는 이 수송단의 꼬리가 무려 30Km에 달해 평생 보기 어려운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이윽고 동아는 생명과 다름없는 물을 펑펑 쏟아 올렸다. 콸콸 쏟아지는 통수(通水)의 순간만큼은 정쟁으로 분열되고 대립과 갈등으로 날을 지새웠던 리비아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을 터이다. 이렇게 동아의 신화(神話)가 시작됐다. 동아맨들의 투혼(鬪魂)이 만들어 낸 전대미문의 기적이었다. 동아는 알라가 준 선물이었다.

기적은 입찰전쟁 때부터 시작됐다. 총공사비 37조가 넘는 세기의 토목공사에 세계의 굴지 회사들을 제치고 무명의 동아가 최종입찰을 따내 세계를 경악케 했다. 1964년 무혈 군사쿠데타로 최고실권자가 된 리비아의 카다피는 석유 고갈에 대비하여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수로관 건설을 구상했다. 당초 카다피는 하루 650만 톤의 물을 사막에서 끌어 올려 물 문제를 해결하고, 공업용수는 물론 거미줄 같은 농업용수 공급망을 통해 사막을 푸른 경작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를 가리켜세계 8대 불가사의가 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리비아 정부는 발 빠르게 대수로사업부를 신설하고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카다피의 구상을 실천에 옮겼다. 20세기 세계 최대규모의 대 역사(大役事)는 이렇게 막을 올렸다.

 

20세기 최대의 토목공사와 동아의 좌절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시작된 공사는 1991년 제1단계와 1996년 제2단계 통수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5,542Km에 달하는 5단계 프로젝트 중에서 65%3,604Km를 완공시켰다. 목숨을 건 한국인의 열정과 투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외신은 앞 다투어 타전했다. 그러나 좌절의 순간이 찾아 왔다. 1,938Km를 미완공 구간으로 남긴 채 사막은 지금도 무겁게 침묵하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던 2001, 동아건설이 최종 파산했고 2011년에는 카다피가 죽었다. 동아는 석연치 않은 정치적 음모에, 리비아는 민주화운동으로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가 무너지면서 내전의 와중에 시민군에 의해 사살됐기 때문이다.

기적에 이은 동아의 좌절은 동아건설이 시공했던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인해 촉발됐다. 설상가상 노태우비자금 사건으로 최원석 회장이 법정에 서기도 했다. 외환위기도 시작됐다. 동아그룹은 370만평 김포 매립지를 국제금융허브로 만들어 비상출구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현장 지목이 농지이며 허가 시 특혜시비가 발생한다며 용도변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업의 마지막 살길조차도 차단해 버린 것이다.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 막바지인 2001년에 최종 파산함으로서 동아그룹은 해체됐다. 다분히 정권 차원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아맨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다가오고 있는 공사 재개의 순간들

그동안 완공 된 대수로는 현재 잘 관리되고 있다. 다만 농업용수보다는 식수와 생활용수 공급으로 리비아 국민들이 삶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같이 불안정한 내부정세에서 대수로 같은 대규모 공사에 정부나 언론의 관심이 적은 건 사실이다. 2016년에는 국제사회의 중재로 형식상 통일을 달성했지만 각 종파, 정파 간의 대립과 분쟁은 아직 깔끔하게 종식되지는 않았다.

이런 가운데 20216월에는 오랫동안 분단됐던 동서 도시를 연결하는 지중해 해안고속도로의 봉쇄를 풀고, 내전으로 쪼개졌던 국토를 하나로 통합하는 고속도로 운행도 시작됐다. 이처럼 리비아는 과도기를 지나 통합정부 구성과 국가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며 조만간 실시될 예정인 총선도 준비해 왔다.

과도기 종료를 앞둔 공백에 한국이 주목해야 한다. 한국 주도 공사재개라는 상황이 펼쳐지면 리비아의 정치적, 산업적, 경제적, 나아가 중동정세에도 생각하지도 못한 긍정적 상황변화가 올 수 있다. 사막을 경작지로 변모시키는 것을 싫어할 중동 국가는 없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기회를 만들어 내면 리비아의 내전 종식, 통합정부 구성, 국가정상화와 중동정세의 안정에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동아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마다해야 할 이유가 없다.

 

, 윤석열 정부인가?

각박한 국제환경 속에서국제연대의 강력하고 아름다운 위력을 보여 주자는 것이다. UN 차원의 개입이나 사우디의 현 총리 빈 살라만, 무함마드 왕세자, 빌 게이츠, 인도의 거부들처럼 뜻있는 국제기구와 인사들이 이 위대한 여정(旅程)의 행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한국정부가 맡으면 어떻겠는가? 실세 살라만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여 460조 규모의 투자약정서를 윤 대통령에게 써주었다. 리비아 공사 재개는 1조원이면 된다. 그리고 리비아 사막에는검은 황금석유가 있다.

공사 재개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주의자로서의 한국의 국격(國格)을 한층 더 높이게 된다. 한반도의 평화도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는 이미지 메이킹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북한 다루기와 한반도 주도권 장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해외건설 참여로 건설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우크라이나 전후복구사업에 한국기업의 대거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통합정치에도 기여 할 것이다.

대통령 자리는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이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해 준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라. 그리고 세계를 감동시켜라. 세계를 감동시키는 것이야 말로 국가 번영과 생존의 또다른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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