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포퓰리즘은 흔히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한다는 뜻으로 ‘대중주의’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핵심은 대중이 아니라 ‘적’을 규정하는 데에 있다. 대중 혹은 인민의 적을 규정해놓고 대다수 인민을 그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정치 노선이다. ‘적’은 보통 그 사회의 ‘엘리트’라고 규정되지만, 외부의 적으로 규정될 때도 많다. 포퓰리즘은 인민의 뜻을 반영한다며 직접민주주의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민을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포퓰리즘이라 하면 우파 포퓰리즘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우파 못지않게 좌파 포퓰리즘도 기승을 부린다.

경제적으로는 고소득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우파 포퓰리즘,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국가들은 좌파 포퓰리즘으로 나뉘기도 한다. 흥미로운 예외 사례는 한국이다. 고소득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좌파 포퓰리즘 성향을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는 우파 포퓰리즘의 경향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둘 중 무엇이 더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냐고 묻는다면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좌파 포퓰리즘은 흔히 반(反)엘리트주의, 반(反)기득권주의, 반(反)자본주의, 반(反)글로벌라이제이션, 사회정의, 평화주의, 민족주의 같은 흐름들과 손잡는다. 우파 포퓰리즘도 반엘리트·반기득권이라는 점에서는 좌파 포퓰리즘과 공통점을 갖기는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우파 포퓰리즘인지 여부는 논쟁적이다. 어떤 이들은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기도 하는데, 기득권 카르텔을 척결하겠다는 반복적인 강조는 포퓰리즘의 혐의를 풍기지만, 아파트 철근을 빼먹는 건설 카르텔처럼 구체적인 대상과 범죄를 적시할 수 있다면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윤석열 정부가 국제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반여성·반페미니즘 정책이었다.

결국 관건은 실력이다. 구체적인 타깃을 정확히 설정하고 국민의 삶을 바꾸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개혁이라 평가받을 것이고, 애매한 레토릭만 남발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써먹는다면 포퓰리즘이라 비판받게 될 것이다. 평가를 확정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문재인 정부와 현재의 민주당이 좌파 포퓰리즘인지 여부는 꽤 확정적이다. 대상이 분명치 않은 적폐청산, 부동산을 비롯해 경제적 상층에 대한 징벌적 세금, 북한과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비현실적 집착, 현직 장관이 나서서 죽창가를 운운할 정도의 민족주의와 반일감정 자극 등은 많은 전문가가 전형적인 좌파 포퓰리즘의 징후로 지적했던 것들이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현 대표에 이르면 포퓰리즘적 특성은 더욱 짙어진다. 그의 대선 출사표 자체가 ‘억강부약(抑强扶弱)’,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는 포퓰리스트 구호였다. 지구 위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상위 10% 국민에게 국토보유세를 부과해 재원을 충당한다는 구상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뜻을 새겨보면 남의 돈으로 내 정치 하겠다는 구상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미 소득세도, 재산세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더 이상 상층 국민에게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과 0.73%라는 표차로 거의 대통령에 당선될 뻔했다.

이재명이라는 걸출한 포퓰리스트의 등장은 그의 개인적 특성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가 더 이상 정치를 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좌파 포퓰리스트는 계속해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쉽게 등장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오히려 현역 의원들이 앞다투어 충성을 인증하는 성공사례를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편성한 긴축예산을 설명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세금 낼 사람은 빠르게 줄어들고 세금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으니 재정을 투명화·합리화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대 최고로 나랏빚을 늘려놓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에서 진보 정부가 더 낫다고 자랑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 정부 비판이 곧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설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루어진 감세 조치들은 전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과격한 증세를 원상회복하고 국제경쟁력을 되찾는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전 정부 비판에만 집중하다 보니 국민의 눈에는 좌파 포퓰리스트를 비판하는 우파 포퓰리스트로 비친다. 당장 보수 언론에서조차 부자와 대기업 세금 깎아주더니 세수 펑크 났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원칙 없는 증세와 원칙 없는 감세를 번갈아가며 되풀이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고, 좌파 포퓰리즘이 득세할 수 있는 조건은 더욱 무르익어 갈 것이다.

이제곧 총선이 치루어진다. 표심을 잡기위한 포플리즘, 죄파도 우파도 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라를 진정 위하는 옳곧은 정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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