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동했다. 최근 동방경제포럼(EEF)이 열린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이 회담 장소로 거론됐지만, 두 사람은 러시아 동부 스보보드니에 최신 설비를 갖춘 보스토니치니 우주기지를 택했다. 대륙 간 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을 상징하는 우주기지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군사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우주 기지다.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느냐는 현지 매체의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고, 북한의 질주를 말려야 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도자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우수 프로그램”이라고 하다니 어불성설이다. 크렘린궁 “ 양 정상이 공개되면 안 되는 민감한 영역에서 협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위원장도 “러시아는 러시아에 반대하는 패권세력에 맞서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전선에 함께하겠다고 거들었다.

북한은 정상회담 직전 두 발의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쏘며 최고지도자와 군 수뇌부의 공백 상태에서도 한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다고 시위했다. 김 위원장은 귀환길에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 함대를 방문했다. 두 사람이 대놓고 선을 넘으면서 잘못된 만남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포탄 지원이 절실하다. 러시아의 인공위성과 핵·미사일 관련 처단기술을 옛 소련의 지원으로 6·25전쟁 준비를 마쳤던 북한에 2023년판 무기 현대화 퍼즐의 마지막 조작이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지 몰라도 우리에겐 재앙이 될 수 있다.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장관이 다음 주 한국을 찾아 대북 제재 등으로 맞서려 한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지금처럼 막무가내식으로 군사협력에 나설 경우 그 한계가 우려된다.

1921년 자유시 참변이 발생했던 스보보드니의 우주기지에서 이뤄진 잘못된 만남, 위험한 거래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러시아와 직접 외교적 소통으로 설득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정부가 추구했던 한·미·일 협력을 통해 핵잠수함이나 위성발사와 관련한 시설이나 장비의 이동을 해상 통제 등 물리적으로 막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 정보 능력을 확충해 관련 정보가 파악되는 즉시 국제사회에 알려 양국을 고립시키는 여론전·인지전을 준비해야 한다. 김정은이 4년 반 만의 첫 해외 방문임에도 전통적 혈맹이라는 중국이 아닌 러시아를 먼저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냉전 종식이래 북한 정권이 늘 먼저 찾고 자주 찾던 나라가 중국이다. 이웃 주권국가를 침략하고 핵·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는 두 도발자는 이번 만남에서 겉으로는 경제협력이나 인도지원 같은 포장을 씌우겠지만 그 핵심은 북한의 포탄 로켓 등 재래식 무기와 러시아의 핵잠수함 정찰위성 핵미사일 등 군사기술을 맞바꾸는 거래에 있다. 그 위험한 거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쟁을 더욱 기나긴 소모전으로 만들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험을 한충 키울 것이다. 유럽과 동북아에 두 개의 신냉전 대결 전선을 만들어 서방의 대응을 분산시키려는 책동이다. 지금 세계는 두 독재자의 만남 못지않게 그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꺼리는 중국으로선 일단 북-러 간 밀착에 거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중국이 여기에 가담한다면 국제질서 파괴의 공법으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장 북-러 간 불법 무기거래에 대해서도 방조하거나 묵인한다면 그 위신과 입지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나경택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총재)
나경택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총재)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