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과거 정상이나 상식이었던 많은 것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나 ‘뉴노멀’이라는 신조어는 이런 대전환의 시대를 묘사하는 용어가 됐다. 특히, 이런 일은 우리나라 정치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정치인이었다가도 당장 사퇴했을 윤리적·법적 하자를 가진 이재명 씨 같은 사람이 ‘개딸’이라는 팬덤을 몰고 다니고,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 대표로 파벌을 형성해서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거짓말을 통치기술로 인식 땐

온라인은 음모론 확산에 최적

우리 모두는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든 아니면 창피함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이든 간에, 부정직함은 우리 모두에게 죄가 된다.

온라인 미디어와 SNS가 주류가 된 세상은 역사상 거짓말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기에 가장 좋은 시대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허위 정보, 가짜뉴스를 퍼뜨릴 수 있다. 1음모론도 최전성기다. 특히, 진입장벽이 낮은 온라인 유트브 토크쇼가 위력을 발휘한다. 음모론의 전제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실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모든 일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증거보다 믿음에 기대고 있어서 논박이 통하지 않는다. 리더의 말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지부조화가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이를 해소하려 거짓말쟁이를 버리진 않는다. 대신 믿음을 확증해줄 정보를 찾는다.

지금 현실 정치에선 정치인도 대중도 열광적인 충성을 보인다. 허위로 감싼 리더도 한둘이 아니다. 왜 진실이 정치 편향에 파묻히는 시류가 판칠까.조작과 은폐에서부터 명백한 속임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부정직한 행위는 개인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거짓말은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한 거짓말이라도 언젠가는 들통나기 마련이다. 특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해도 이전에 했던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대부분은 결국 계속해서 더 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죄악시한 철학·종교전통을 정치적 현실주의로 바꾼 건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신뢰를 저버리고 파기한 언약은 허다하다”면서 “(간교한) 여우의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군주가 1인자가 됐다. 그것을 은폐할 줄 아는 위선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대중은 알지 못한다. 겉으론 신실하고 정직해 보여서다. “군주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중은 군주의 행동에 대해 결과로써 수단을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 리더의 거짓말은 필수이고, 대중은 이를 따지지 않으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490년 전의 언명이 유효한 현실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마셀 다네시(언어인류학)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거짓말의 기술’에서 “거짓말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라고 추론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생존에 필요한 기능적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학자들은 이를 ‘마키아벨리적 지능(Machiavellian Intelligence)’이라고 명명했다. 이게 선을 넘으면 파괴적인 행위가 된다. 악의적인 ‘까만 거짓말’, 어둠의 기술이다. 위선, 조작, 왜곡, 사기, 편취, 속임, 농락, 호도, 현혹, 기만, 배반 등이 모두 거짓말에 해당한다. 정치 리더의 거짓말은 대중을 조종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정적에 대한 반감, 분노에 불을 지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을 자극할수록 효과는 커진다. 히틀러는 “큰 거짓말을 꾸며내라. 단순 명료하게 포장하라. 계속 말하라. 그러면 결국 사람들이 믿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조국 씨 일가의 비정상적인 삶의 양태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가족의 비상식적·비정상적인 삶으로 인해 법의 심판을 이미 받고 소추 중인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들의 삶과 행동을 비판하고, 자숙(自肅)은커녕 정의의 투사인 듯이 나선다. 자칭 ‘양심 세력’이라는 범운동권 좌파의 간판을 무색하게 하는 행동들은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으로서는 정말 ‘염통(심장)에 털이 난 짓’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교육감 등 선출직은 물론 정부 고위직 공무원을 하면서 이런 행태를 보인 사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 사람뿐일까? 대학교수, 변호사, 언론인, 고위 전문 관리직을 하면서 조국 교수 일가와 같은 삶을 산 사람은 조 교수뿐일까? ‘운동권 좌파’ 같은 이른바 ‘내로남불’ 행태와 끼리끼리 나눠먹기 행태가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행정부·국회·법원의 고위 공직자들은 다수결과 법치를 빙자해서 맡겨진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해서 제 논에 물 대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있을까?

우리는 국방·치안·사법·교육·복지·행정·산업에서 과연 우리의 믿음에 부합하는 일을 하는 믿을 만한 공직자들을 두고 있을까? 그들이 우리가 맡긴 권력과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우리의 안위와 재산 보호를 위해서,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위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오늘날 평범한 국민이 가진 큰 걱정이자 우려임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국회의원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당사자는 물론 민주당까지도 마치 그가 무죄가 확정된 것처럼 행동하는 일이나,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고 가족 전체가 사법적 소추를 받는 조국 교수와 자녀가 마치 민주화 이전 시절 탄압에 저항하는 투사인 양 나서는 것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유사한 상황이라고 해서 거짓말의 기술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단순 대입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알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불법은 밑에서 한 일이라 하며, 전화로 위증해달라 한 것도 부인하는 것을 여기서 가릴 계제는 아니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식언한 것도 ‘그런 게 정치’라고 하면 끄덕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성남FC 특혜에 이어 백현동·쌍방울·위증교사 건까지 기소되면 3곳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불구속 결정을 무죄 판결이나 받은 듯이 ‘사법 리스크는 끝났다’는 사람들에게 과연 진실의 정치가 있는지 묻는 것이다. 거짓을 알면서도 대안이 없어서 굽신거리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즘이다. 민주당의 ‘탈(脫)진실’은 끝나지 않았고, 진실의 심판대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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