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윤석열 정부 출범 1년5개월 만의 선거가 여권의 완패로 귀결된 데는 공천·전략적 실책도 있겠지만, 그 바탕엔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 작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갤럽 조사(9월 22일)에서도 확인되듯 여론 지형은 보수(33%)-진보(33%)-무당층(29%) 3분할 구도다. 어떤 정당도 중도층에 소구하지 못하면 압승이나 과반이 어렵다는 뜻이다. 국정 운영에 대한 깊은 성찰과 총체적 쇄신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여권으로선 내년 총선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선 만사를 가름할 인사가 독단·독선적이지 않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특히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12일 자진사퇴는 만시지탄이다. 지명 이후 주식파킹·배임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졌는데도 제대로 된 소명 없이 청문회장 이탈 논란으로 여론 악화를 초래했다. 지난 주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임명도 순탄치 않았다. 부적격 의견(유 장관)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신 장관) 강행됐다. 현 정부 18번째 사례다.

야당의 힘자랑과 인사청문회 제도의 한계도 부인할 수 없지만, 내로남불 전정부 탓이나 협소한 인재풀과 인사 추천·검증 시스템이 국민 눈높이에 부합했는지 자성이 필요하다. 앞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10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 미신고 등으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그게 낙마 사유인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면 정부·여당의 사전 설명과 설득 작업이 마땅했지만, 관성적 밀어붙이기로 35년 만의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를 피해 가지 못했다.

정책 입안 프로세스도 되짚어봐야 한다. 수능 킬러문항, 만 5세 입학, 주 69시간제 논란이 대표적이다. 설익은 상태에서 불쑥 나와 삐그덕거리며 내부 소통 부재를 드러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정 운영이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피해갈 수 없다. 사회 갈등 양상이 정서적 양극화로 심화하는 단계에서 소통·통합·포용의 리더십에 대한 갈증도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권이 오른쪽으로의 이념 행보는 한층 강화하는 반면, 대통령-야당 대표 회동은 물론 여야 대표 간 만남은 모두 정지 상태다. 윤 대통령이 주안점을 둔 외교 활동이 긍정평가의 으뜸으로 꼽히지만, 부정평가 요인에서도 1위(갤럽)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전히 국민 불안이 큰 터에 여당 지도부가 수산물 먹방으로 실소를 자아내는가 하면, ‘당정 일체’ 구호 아래 용산에의 쓴소리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깊이 새겨야 한다.

안보,경제 민생,소통을 담은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실책은 한국 유권자의 역린(逆鱗)을 간과한 데에서 비롯됐다. 역대 선거에서 승부를 가른 요건은 다양했겠지만, 특히 오만함을 보이는 정치 세력은 대부분 표로 응징받았다. 오랫동안 주요 선거를 경험한 정치인들이라면 정당을 불문하고 뼈저리게 아는 사안일 텐데, 과오가 반복된다. 주로 집권당에서 잦은데, 손에 쥔 권력이 판단을 가리기 때문이다.

여권은 이번 보궐선거를 국정 운영의 미비점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야 간 대화를 찾아볼 수 없고 극한 대립만 일상화한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도 문제이지만, 민생 문제를 풀어갈 책임은 여권에 있다.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 필요한 정책을 법제화하는 것도 집권 세력의 역량이다. 참신한 인재를 선보여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자격 미달 시비가 잇따르는 인사들을 장관 후보로 내세우는 등 독선적이거나 독주하는 인상을 주지 않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우리 안보는 물론,경제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3고위기에 직면했고, 자영업자 등 국민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내년 총선 민심은 여야에 더 혹독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내년 총선은 현 정부 출범 2년을 맞는 상황에서 치러진다. 성과와 실적에 냉정한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민생과 안보경제를 최우선에 둔 전면적 국정쇄신 외엔 방도가 달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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