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지난 30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주 대통령실에서는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행정관들이 소상공인 일터와 복지행정 현장 등 36곳의 다양한 민생 현장을 찾아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듣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민생 현장에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들은 뒤 깨달았다는 내용이 놀랍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식당에서는 끝없이 올라가는 인건비에 자영업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상대책 마련을 호소하셨다”고 했다.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 현장의 절규에 신속하게 응답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일은 없다”며 “지금보다 더 민생 현장을 파고들 것이고 대통령실에서 직접 청취한 현장의 절규를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1년 6개월동안 여야 협치와 소통이 막히면서 ‘정치 실종’ 지적이 적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다만 “어쨌든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대통령인 제 책임 또 우리 정부의 책임이란 확고한 인식을 갖겠다”며 “모든 것은 제 책임이다”고 말했는데 그책임을 지는 실천력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윤 대통령이 주목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호소가 아니라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의미하는 듯하다. 50인 안 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비명이 아니라 그 사업장 경영자들의 애로 사항이 “지금 당장 눈앞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이고 “직접 청취한 현장의 절규”인 듯하다. 차라리 필자가 오해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2022년 노동재해 사고사망자 874명 중 80.9%인 707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사업주에게 부담된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계속 죽도록 그냥 내버려 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업주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이다. 세금은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여당과 대통령이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자영업자의 고충에만 귀를 기울이고, 노동재해 예방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영세 사업주의 호소만 접하다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경영자의 말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말을 몇배나 더 많이 들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 탈퇴’ ‘중대재해처벌 완화’…이것이 윤 대통령의 ‘민생’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선 “국민들은 정부 고위직과 국민 사이에 원자탄이 터져도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통’을 강조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또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이 직접 청취한 국민의 외침 중에서도 공통적인 절규는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날 언급된 ‘민생’ 사례 가운데 다수는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적 시선만을 담고 있다

물가안정과 경제적 불평등, 저출산과 양성평등, 지방소멸에 관심과 비중을 두고 민생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민주주의 주체인 국민 다수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성장이다.

윤대통령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고,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우리를 더 우월한 존재로, 그리고 그들을 열등한 타자로 착각하여 그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거나 회피해서는 절대 안 된다. 독선과 오만, 국가적 나르시시즘의 끝에 쇠락과 파멸이 온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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