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은 경제회생 세수 증가해야 가능

당국, 한은·국회·경제단체 등 긴밀히 논의를

한국경제가 어렵다. 가계와 기업 부채 급증에다, 10월에 수출이 플러스로 전환됐다고 하지만 ‘부진의 늪’을 다 빠져나오지 못한 내우외환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하고, 올해 전망치는 1.4%를 유지했다. 정부가 당초 연초엔 어렵지만 하반기엔 성장세가 개선할 것으로 봤지만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상저하고(上低下高)’가 아닌 셈이다.

헤럴드 핑거 IMF 한국 미션단장은 미국과 스위스 발(發) 금융불안이 조기에 진정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지만, 중국 경기 침체가 심화되고 제조업 부문 부진이 지속되면서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와 관련해 “내년 한국 경제에 추가적 하방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1∼10월 우리나라의 전체 교역액과 총수출액에서 중국 비중은 각각 20%, 19% 안팎이다. 같은 기간 주력 수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대(對) 중국 수출액 비중은 약 45%에 달했다. 글로벌 경기에 악재로 작용하는 중국의 경기부진이 유독 한국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구조가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굳어지고 있다. 중국 경기 부진과 맞물려 수출이 뚜렷하게 살아나지 않는 데다, 고금리와 고유가라는 대외 악재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1%대 초중반으로 예상되는 저성장세가 일시적인 부진이라기보다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경험 못한 우울한 추세다. 기업의 가동률과 수익률이 떨어지고, 금융기관의 연체율은 올라가고 있다. 경제 구조도 문제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청년세대가 무력증과 상실감에 짓눌려 있다. 성장동력이 멈출 징조는 도처에 있다. 잘못하다가는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위험도 엿보인다.

이 새로운 현실에서 정부는 어떤 정책을 써야 할까. 세계 속의 한국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1980년대에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보수적 재정정책을 썼고 인플레이션을 꺾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썼다. 물가를 잡은 후 서브프라임 위기가 닥쳤을 때는 반대로 금융을 완화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책방향이 또 변했다. 적극적 재정정책과 금융 긴축이 대세다. 이런 방향 전환은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안이 된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도 서민들의 고통을 줄이고 국가 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부 예산안을 보면, 서민들의 고통 완화는 물론이려니와 지속적 성장을 위한 준비도 부족해 보인다. 올해 본예산은 전년 대비 5.1% 증가했으나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축소다. 내년 예산은 예상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2.8% 증가로 긴축 기조가 더 뚜렷해졌다.

이런 긴축 예산으로 어려운 시기, 전환기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소비가 부족하고 투자도 부진한데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연구개발(R&D) 지원 예산을 16.6%나 삭감하고도 과연 생산성 향상을 촉진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경제는 지속적 저성장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정부 정책은 국가채무 수치보다는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중시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은 정부가 일을 덜 해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살아나고 세수가 증가해야 달성된다. 정부가 인프라도 깔아주고 R&D 투자도 늘리고 불확실성도 줄여줘야 기업들이 투자할 것이 아닌가. 정부는 한국은행과 국회·경제단체 등과 머리를 맞대고 재정·통화정책을 조율해 한국경제의 지속성장 가능성을 심도 있게 협의하고 결정하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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