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투표가 진행되던 지난 28일 윤 대통령은 무난히 부산이 1차 투표를 통과할 것으로 믿었다. 정부 확신에 영향을 받은 언론은 부산의 100만평 행사장 부지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라며 환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개표가 되자 참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90개국 정상과 150여회 정상외교, 5천억원 넘는 공적개발자금 제공, 연중 이어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도 확보한 표는 없었다. 잘못된 희망에 도취된데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독선이 빚어낸 참사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예상 밖의 참패”라며 “외교부 일선에서는 (엑스포 유치가) 힘들다고 (보고)했는데 워낙 (대통령실 등) 위에서 ‘그룹싱크’(집단사고·확증편향)가 있지 않았나 반추하기 바란다”고 국회에서 외교장관을 대상으로 지적하기도 하였다.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건소는 국제 정치에서도 ‘전략적 자아도취’ 현상이 있다고 말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상대방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재단하는 행태다. 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참모가 거의 없고, 대통령 스스로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곁에 두어 자신의 확신을 손쉽게 관철하려고 한다. 정치적 경쟁자를 악마화하면서 대화는 물론이고 접촉조차 피한다. 뭐든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면서 다른 의견을 배제한다

조조는 주유의 꾐에 빠져 현지 물길에 밝은 수군 장수들을 간첩이라며 제거하여 수군 지휘가 엉망이 되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문정부의 치안감급 이상 경찰 고위직들을 대부분 교체하더니, 올해는 멀쩡하게 일하던 대장들을 전원 옷 벗기고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들도 한꺼번에 교체했다. 외교와 정보, 군사에서 혼란이 초래되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다. 국정원과 외교부가 부산 엑스포에서 확보한 표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대통령실 확대 개편… 민생과 개혁에 성과내야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대통령실에 정책실장직을 신설하고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을 승진 기용했다. 또 같은 날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전원을 교체하며 취임 1년6개월 만에 ‘용산 2기’ 체제 출범을 공식화했다. 내년 총선과 집권 반환점을 앞두고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다짐으로 읽히지만, 윤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 기조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당시 ‘슬림한 대통령실’을 강조하며 전임 정부 청와대에 존재했던 정책실장직을 폐지한 바 있다. 하지만 비서실장에게 조직과 인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며 업무 과부하가 걸리고, 정책 조율 기능도 작동하지 않으면서 여당·정부·대통령실의 ‘엇박자’ 행보가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실장을 부활해 구멍 났던 대통령실의 정책 기능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참모들의 총선 출마 및 내각 이동 등을 계기로 수석비서관을 전원 교체해 대통령실의 ‘변화’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정책 혼선은 윤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나 지시를 일선 부처가 수습하면서 촉발된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만 5살 초등학교 입학’ 논란은 윤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 뒤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 3월의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논란 때는 고용노동부와 대통령실의 엇박자가 그대로 노출됐고, 대통령실 입장이 번복되며 불신을 자초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개월 앞두고 나온 윤 대통령의 ‘공정수능’ 발언 역시 수능 난이도 논란으로 번져 교육 현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반복되는 정책 혼선 논란에 윤 대통령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대통령실 개편은 조만간 단행될 개각과 함께 여권이 쇄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당·정·대에 활력소를 불어넣도록 심기일전해야 한다. 정책 혼선을 줄이고 민생과 개혁에 성과를 내야 한다. 부처 장관이 발표한 정책을 대통령실이 번복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장기 침체로 빠져들고 있는 경제를 되살릴 방도를 찾고, 노동과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앞두고 무엇보다 야당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대통령 자신의 독단적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지금까지 발생한 혼란은 또다시 재연될 소지가 다분하다. 대통령실 조직개편보다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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