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동 칼럼니스트
김선동 칼럼니스트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존재하고 내용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책이 갖고 있는 가치와 무게도 제각각이다. 허접한 내용의 쓰레기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고 희귀성이 있어서 보물로서의 귀한 대접을 받는 책들도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길가에 버려지고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전락해 연기로 사라지는 불운한 책들도 있다.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 눈에 띄는 책들이 있다.

바로 소설(小說)이다. 감동이 있는 소설은 책 표지만 봐도 눈 끌림이 온다. 굳이 추천인들의 글을 읽지 않더라도 감동적인 느낌이 온다. 인기가 있거나 명성이 자자한 성공소설은 읽을 때마다 독자 자신이 성공한 듯 즐겁고,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는 소설을 읽으면 스스로가 더 고통스럽고 힘든다.

소설 속 주인공과의 동화현상이자 감정의 전이현상 때문이다. 소설속에서 주인공이 건강을 잃어 움직임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독자들이 자신의 건강함에 감사하고 자신들이 살아 있음이 축복이며 자신들의 건재함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이처럼 소설은 읽는 독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독자 개개인들에게 의식의 변화를 촉발한다. 다중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도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감동적인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값진 선물이자 영향력이다.

이 점이 바로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妙味)이고 마력(魔力)이다.소설 마니아들은 소설속에서 묘미를 맛보고 매력을 탐해보고 싶어 소설 속으로 독서여행을 떠난다.

밤을 지새우며 삼매경에 빠져 소설을 읽는 즐거움,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감동적인 대사는 암기하고 문장이 던지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상상의 세계속으로 빠져드는 쾌감은 소설을 읽는 사람 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읽고 또 읽고 되새겨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소설속으로 빠져들어 헤어날 줄 모른다.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때로는 안타깝고 안쓰럽기도 하다.

소설은 작가가 그리는 작품속에서 독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작가와 한 몸 한 뜻이 되어 허구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여행 장구를 챙기고 떠나듯이 소설 속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감성(感性)이 동화되는 열린 마음으로 자신이 읽는 소설을 통해 현실 사회를 반추(反芻)해보고 독자 자신들이 실제로 처한 형편과 환경을 고려해 가면서 작품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작가들은 독자들의 심리상태를 감안해 마음을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독자들이 분위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스토리를 구성한다.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면서 긴장감을 주었다 풀었다 해야 독자들이 해찰하지 않고 소설 속 여행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 독자들은 허구의 세계를 통한 자아실현의 만족을 위해 소설을 읽는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이런 측면에서 독자들은 몰입도가 높은 고도의 지략적(智略的)인 플로트 구성에 열광한다. 너무 평면적이거나 느슨한 스토리 전개는 긴장감을 주지 못해 독자들은 호기심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 기승전결의 기본적인 구성틀은 유지하되 진행 속도감의 조절 또한 중요하다.

갈등구조를 너무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스토리 전개를 억지로 꿰 맞춰서 긴장감이 감소되면 독자들은 독서의 흥미(興味)를 바로 잃는다.

명작(名作)들을 읽어보면 예전에 읽으면서 몰입됐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와 소설을 읽는 재미를 새롭게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느낌으로 소설을 읽게 한다. 요즘은 대하소설이나 너무 긴 장편소설은 여간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소설을 읽어 나가기가 어렵다. 소설은 분명히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소설 나름대로의 독보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그와 같은 매력에 빠져 하얀 밤을 지새우며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여명이 환하게 밝아온다. 그제서야 현실세계로 돌아와 제정신이 든다. 옷을 챙겨 입으랴, 출근하랴 늦은 시간에 아침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채 허둥지둥 출근길에 오른다. ​

출근길 버스 안에서조차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자꾸만 떠오른다. 너무나 궁금해 가방속에서 못다 읽은 소설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한다. 소설속으로 한없이 빨려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버스 기사분이 큰소리를 지른다. “종점에 다 왔는데 안 내리고 뭐하냐”고. 시간을 본다.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났다. 그는 오늘도 지각을 한다. 소설 때문에.

2024년 새해가 일순여(一旬餘) 밖에 남지 않았다. 새해에는 많은 소설가들이 읽은 만한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고 거짓과 가짜가 판을 치는 삭막한 사회가 되고 있어서 걱정이다.

소설을 사랑하는 소설 마니아들이 많이 늘어나서 이 세상을 소설처럼 적당히 갈등하고 적당히 양보하는 세상. 어우렁 더우렁 어울려 사는 세상. 아름답고 살기 좋은 소설같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세상이 구현(具現)되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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