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김상호
칼럼니스트 김상호

 

요즘 청년들은 연애도 귀찮아한다지만 황혼 연애 열기는 뜨겁다. 65세 이상 인구가 900만 명, 이 중 22%가 혼자 사는데 건강하고 재력 있는 ‘액티브 시니어’들은 사랑에도 적극적이다. 대학 CC(캠퍼스 커플)처럼 복지관에는 BC(복지관 커플)들이 부러움을 사고, 5070 전용 데이팅 앱도 회원 수를 불려가고 있다. 하지만 사랑의 마음을 악용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도 덩달아 많아져 문제다.

특히 소셜미디어로 ‘연애’하듯 접근해 ‘금융 사기’를 치는 ‘로맨스 스캠’ 피해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65세 남성이 ‘호주 출신 46세 여성’과 4개월간 메신저로 밀어를 주고받다 “괜찮은 가상화폐가 있다”는 말에 속아 1억2000만 원을 뜯긴 사건이 화제가 됐다. 공무원으로 은퇴한 60대 남성은 채팅앱으로 만난 여성이 “수술비가 필요한데 해외에 돈이 묶여 있다”고 호소하자 800만 원을 먼저 보내고 노후 자금 5100만 원까지 보내려다 은행 직원이 금융 사기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에 신고한 덕에 추가 피해를 면했다. 올 1∼10월 로맨스 스캠 신고 건수는 111건, 피해액은 48억 원인데 피해자의 상당수가 고령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요즘 SNS상을 통해서 특히 외국인들이 접근하기도 하지만 가명을 사용한 국내 사기꾼들도 극성이다.

특히 정년퇴직한 직장인은 물론, 군인,경찰,교직자들의 퇴직금을 노리는 이런 달콤한 손길은 다양하다.

기획부동산에 속아 쓸모없는 땅을 거액에 사드리거나 주식투자와 가상화폐는 물론,다단계식 건강기능식품판매, 재취업을 미끼로한 사기,보이스피싱등 까지 그 폭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허경영 하늘궁,전 대선 후보가 운영 중인 종교시설 '하늘궁'에서 80대 남성이 썩지 않는다는 '불로유'를 먹고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 허경영 '불로유' 사건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어리숙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뻔한 내용에 왜 속을까 싶겠지만, 사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유사한 사기행태가 의외로 많이 일어난다.

사기꾼들은 여행을 빙자해 노인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별다른 조건은 없다, 원하는 이들을 모아 관광지 한번 구경하고 오는 여정이다. 그런데 막상 귀경할 때는 일정에 없던 사슴농장과 건강식품 제조공장에 들러 노인들이 엉터리 물건을 사게하는 것.

물건을 안 사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업자들은 노인들의 약한 심리를 파고들어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강매를 권하는 것이다. 효과를 떠나 물건 팔아주는 것이 노인들의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악용하는 상술이다.

사기꾼들은 '소탐대실'을 노린다. 경로당 어르신을 대상으로 건강식품을 홍보하거나 가수 행사에 초대해 싸구려 경품을 주고 상품을 구입하도록 유인하는 고전적인 사기 수법 또한 2023년인 현재도 여전하다.

외롭고 쓸쓸할수록 사기에 취약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노인들 대부분 공짜라는 유혹에 속아 사기에 걸려든다.그러나 사기행각은 노인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유명 펜싱선수가 전창조 에게 재벌 아들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믿기 힘든 희대의 사기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지 않았나.

사회심리학에서는 돈, 건강, 외로움이 사기꾼들에게 좋은 미끼가 된다고 본다. 평균 수명이 늘어 노후 자금이 부족할까 불안한 마음에 속고, 자산이 넉넉한 사람도 “내가 누군데” 하며 방심하다 속는다. 은퇴하면 대인관계가 좁아지고 외로워져 조금만 친절하고 살갑게 굴어도 마음을 주기 쉽다.

해외에서도 그레이 로맨스가 로맨스 사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로맨스 스캠 피해액이 2021년 4억3000만 달러(약 5600억 원)로 2년 전보다 2배로 늘었다. 이에 고령자안전법을 제정해 고령자의 금융 사기 피해가 의심될 때는 금융기관이 본인 동의 없이 금융당국에 보고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두었다. 일본도 고령자가 고액 출금 시 경찰에 통보하게 하고 고령자의 ATM 인출 한도액을 축소하는 사기 방지 대책을 시행 중이다.

로맨스 스캠 보이스 피싱 등 노인 대상 금융 사기 피해 규모가 614억 원으로 전체 피해액 중 37%다(2021년). 큰돈을 거래할 때는 주변에 반드시 물어보는 것이 안전하다. 사기당한 사람들은 민망해서 혼자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고해야 추가 피해를 막는다. 혼자 살거나 병이 있으면 사기당할 확률이 30% 높아진다고 한다. 친지들과 수시로 왕래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 감언이설에 은퇴 자금 날리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불로유라니, 생각해보면 우유가 상온에서도 썩지 않으며 그걸 마시면 마실수록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허경영 불로유 사건의 핵심은, 외로운 노인들일수록 물정에 어두우며 그만큼 친절과 맹목적 감언이설에 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노인들이 누구보다 사기에 취약한 대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고립돼 외롭고 쓸쓸한 노인일수록 사기꾼에게 더 취약하다. 우리 주변 노인들의 일상에 보다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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