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문학협회 이사장  부학장, 교수, 시인, 작가, 기자, 작사가 
대한시문학협회 이사장 은결 유정미, 부학장, 교수, 논설위원, 시인, 기자, 작사가, 작가 

 

1993년 4월 27일(월) 찬란한 봄빛이 나래를 펼치는 12시 49분에 사랑스러운 유능이가 우리들의 세계에 울음을 터트렸다. 25일에 진통이 시작되어 스완지 종합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미리 개인 병실을 예약해 두었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유능은 나와 묶인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버티었다. 유능이가 버티는 힘에 따라 허리 진통이 해일처럼 몰려와 내 검은 눈동자에는 물빛이 가득 담겼다.

 

믿음의 기도는 진통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이 있기에 하나님을 백 번 넘게 불렀다. 더 이상 두면 위험한지 의사는 전자흡입기를 유능의 머리에 대고 끌어당겨 나와의 끈을 잘랐다. 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황달 증상이 있다고 그 갓난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넣었다.

 

나는 지친 육신으로 주님께 영혼을 담아 기도를 드렸다. 24시간 후에 나의 품에 안긴 아기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귀여운 천사였기에 품에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영국 친구들은 항상 해맑게 웃는 유능을 보면서 ‘웃으면서 태어났다’ 고 말할 정도로 활발하고 명랑한 아기였다. 유능을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이나 백화점에 가면 영국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며 안아주고 뽀뽀해 주었다.

 

한 돌이 안된 유능은 다리 힘이 아직 약한데도 기우뚱 기우뚱거리며 옆 집에 자주 놀러 갔다. 그 때마다 스텔라 아줌마는 “유능이가 눈웃음 치는 것이 너무나 귀엽다.” 며 맛있는 간식을 주고 잘 돌봐 주었다.

 

나는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유능을 위해 큰 잔치를 열었다. 한 돌에 한인들과 학장님, 교수님, 친구들을 모두 초대했다. 한국 음식과 영국 음식을 일주일 동안 준비를 했다.

 

한인들이 도와준다고 하는데도 음식 맛이 섞일 까봐 정중히 거절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많은 음식을 혼자 요리를 했다. 다행히 나는 엄마의 손끝을 유전 받았고, 정성을 쏟았기에 음식들은 혀끝을 흥분시켰다.

 

손님들의 릴레이 칭찬에 장미꽃이 되어 행복이 머무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유증으로 몸살이 나서 고생을 했지만 추억의 정원에 묻어 두었다가 꺼내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유능은 아기 때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 책 보다가 엎드려 꿈 속에 빠지기도 하고 읽어 주면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너무 활동적이라 가만 있지를 안 했다. 오죽하면 모든 물건들을 위로 다 올려 놓고 살았다. 그때는 우리가 자유로운 학생 신분이라 모든 면에서 여유가 있었다.

 

공부한다고 늦게 갖은 귀한 아들, 유능에게 ‘최고’ 좋은 것으로만 치장을 해 주었다. 장난감, 가구, 옷, 책 등이 한 방을 가득 차지했다. 유능은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주위 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해처럼 밝게 자랐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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