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27일부터 중대재해법 확대로 영세사업장 비상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발생시 적절한 안전보건조치가 이뤄지도록 관리, 감독을 해야 할 의무(안전보건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해당 법인에 대한 강력한 형사처벌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죄형법정주의 원칙 중 ‘명확성’과 ‘적정성’의 원칙에 반하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예정대로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되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총 83만7000곳이고, 종사자는 800만 명에 달한다.

적용 시기를 2년 미루는 법률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1년 이상 형사처벌 등을 받는 리스크를 영세 기업들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맞게 됐다.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할 경우 다음 달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동네 골목상권의 줄폐업 사태를 막기 위한 민생 현안 처리는 이렇듯 합의가 지지부진하지만, 정치인들이 지역에서 생색낼 수 있는 SOC 사업은 일사천리다. 대표적인 게 그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달빛철도 특별법’이다. 이는 광주송정역과 서대구역을 연결하는 총연장 198.8㎞의 철도 건설사업인데, 예상 사업비가 8조7110억원(복선 기준)에 달한다. 국가재정법상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신규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실시해야 하나, 달빛철도는 여야 합작으로 특별법을 만들어 예타를 면제했다.

동서 지역 화합과 국토 균형발전이 명분이라고는 하나 세금이 8조원이나 들어가는 사업에 경제성 검증을 무시하는 건 국가 재정의 뿌리를 흔드는 처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강화해 후진국형 중대재해를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각종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 발생 시에는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해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 경영계는 영세 기업 90% 이상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적용을 유예하자고 야권을 설득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유예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정부의 사과, 구체적 재해예방 계획, 2년 뒤 시행 약속 등은 대부분 충족됐다. 하지만 민주당이 막판에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민주당이 다른 이유를 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동계는 산재 사망사고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유예 없는 적용을 주장해 왔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부작용이다. 건설업계에는 처벌에 대한 공포가 퍼지고 있다. 법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기엔 비현실적인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이 전문인력 부족과 안전보건시설 확충 비용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법 적용을 받는 50인 이상 중소제조업 322개사를 대상으로 ‘법 준수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53.7%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부담은 크게 나타났다. 50~100인 기업의 경우 60.7%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업체들이 직원을 해고하거나,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직원 수 5명이 넘는 사업주 중에서 직원 수를 4명 이하로 낮춰 사법 리스크를 피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청년보다 건강이 안 좋고, 사고 회피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층 근로자가 먼저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사망 사고 등으로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고 폐업할 경우 일터를 잃는 근로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영향권 안에 있는 근로자중소기업이 전문인력 부족과 안전보건시설 확충 비용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영세 사업장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적용 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음식점, 빵집, 커피전문점 주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역시 새로 포함되는 공사비 50억 원 미만 건설현장들은 안전관리 책임자를 둘 여력이 없다며 자포자기 상태다. 고용노동부가 자영업자 등을 상대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지만 받을 수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하고, 사설 컨설팅을 받으려면 1000만 원 이상 든다고 한다.

2021년 제정 때부터 중대재해법은 과도한 처벌 규정, 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그 후 3년간 정부가 법률 재정비, 대비책 마련을 게을리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당장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근로자 일자리를 없앨 법이 시행되도록 방치하는 정치권은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는 예고된 혼란에 눈을 감고, 법만 만들어 놓으면 할 일을 다한 것처럼 법 뒤에 숨어 있어선 안 된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실현 가능하도록 법을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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