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 –처음사랑”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이경성 화백이 오는 4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5-4에 소재한 마루아트센터에서 “바닥에 새긴 사랑(The Love Written on the Ground)”을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이경성 화백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졸업(85년)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정부청사 초대개인전 등 개인전 20회와 한국미술관, 안젤리미술관 초대전, 마니프 초대전 등 각종 해외 아트페어 및 단체전 200여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외 각종 공모전 28회 수상한 중진 작가다. 

현재 GAF365 전속작가, Saatchi Art소속작가, 한국미협, 구상전, 경기도미술대전 초대작가로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벗이 미술관, 씨네21, 용인시축구센터, 용인시청 등 여러 곳에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소멸침식기법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이 화백의 특징이다. 

소멸침식기법은 바탕을 견고히 만든 후 스케치를 하고 부조를 만든 다음에 채색을 한다. 그리고 석회로 덮는다. 그런 다음에 온갖 도구를 사용해서 갈아내고 녹여내고 닦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 출품하는 작품들은 기존의 소멸침식기법에 프레스코화의 한 방법인 세코프레스코 기법을 더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들이다. 그만큼 공력을 쏟았다는 것이다.

새해 들어 완성한 ‘Thorn tree-first love’(떨기나무 –처음사랑)-캔버스 위에 소멸침식기법+세코프레스코-163x130cm)- 등 100호 7점을 포함해 총 50~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경성 화백은 이번 전시회의 주제 “바닥에 새긴 사랑”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이 주제는 예수님이 간음한 현장에서 잡아온 여인을 두고 사람들이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쳐 죽이라 했는데 당신은 어찌할 것이냐는 질문에 예수님이 보여준 행동에 영감을 얻었다.”며 “그때 예수님은 조용히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는데 그 장면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언젠가 전시의 주제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석회 바탕을 녹이거나 파내는 내 작업 방식이 마치 그분의 사랑이 나의 모든 것에 고랑을 내는 것과 같아서 이번 전시의 주제로 정했다.”고 밝혔다. 

제작 방식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 화백은 “이번 전시에 최종적으로 제작한 100호 7점에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에서 좀더 자유로워진 방식으로 제작했다.”며 “이미지나 구도 등 기존의 미술조형기법에서 더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또한 “기존 소멸침식법에서의 두께는 좀 더 얇아지고 무게는 좀 더 가벼워지게 제작했다.”며 “채색도 가볍고 경쾌하기를 원해서 세코프레스코 방식으로 굳어진 석회위에 안료를 문질러 채색하고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말리고 물을 뿌리고 말리고를 반복해 서서히 석회에 침투시켜 안착시키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 화백은 “그 결과 수채화처럼 가볍고 산뜻하고 부드러운 결과물이 나왔다.”며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 어떤 이미지나 무엇을 보고나 참고하지 않았다. 구상이나 추상의 구속에서도 벗어나 사전 에스키스없이 밤낮없이 즉흥적인 드로잉으로 나만의 형상들이 나오도록 화면과 협업했다.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고 즐거웠다.”고 했다.

이 화백은 “어린 시절 서당 훈장님이시던 조부께 배운 붓글씨는 필획을 구사하는 토양이 되었고, 채색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도의 풍부한 빛이 모태가 되었다.”며 “화면의 두께와 마티에르는 가장 고심해온 부분인데 너무 두껍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는 회화의 순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깊이와 높이의 정점에 가까워지도록 애썼다.”고 밝혔다. 

향후 작품 활동 계획도 밝혔다.

이 화백은 “앞으로 좀 더 나아가면 우리가 겪는 모든 희노애락의 심연의 본질에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가시나무 같은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 존재의 의미와 피조물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는 창조주의 계획을 내 작업을 통해서 한 줌의 빛만큼이라도 드러나게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전시 디렉터인 정상신 예술 비평가는 이경성 화백의 작품에 대해 “보는 이를 품어 주고 녹여 주고 머금게 하는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정상신 비평가의 이경성 화백의 비평 전문. 

화폭에 중심이 있고, 이 중심에서 원형으로 퍼져 돌아간다. 산들이 펼쳐지거나 다양한 인간의 생활 모습들과 세상의 모습들이 보인다. 드넓고, 광활하고, 우주적이다. 

동방 교회가 건축에서 중앙을 두고 정방형으로 되게 한 것이나, 십자가를 정방형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동방 신학 사상에서 기인했다. 그래서 서방 교회의 바실리카 형태의 교회 건축이나 수직적 십자가 형태와 다르다. 

작가는 중심의 자리를 귀하게 구별했고, 인간의 삶의 다양한 모습도 소중하게 담았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자연스런 모습을 펼쳐냈다. 

중세 말, 저 너머의 하늘 세상만 바라보다가 인간과 이 세상의 생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할 때,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 고딕 양식으로 변해갔던 때, 둥근 스테인드 글라스의 장미창이 교회 건축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도, 당시의 세계관에서 가능했다. 중심이, 퍼져 나간 생활의 다양한 개별성과 아무런 문제없이 연결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한 이 생각은, 교회와 세상을, 하늘의 영광과 이 땅의 인간의 다양한 삶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 십자가를 생명나무로 하는 모자이크 작품이나 그림도 이 시대에 나타났다. 

재질과 기법의 특징: 머금은 빛과 경쾌한 색

‘소멸침식기법’으로 긴 시간 석회를 닦아내어, 그 아래에 있는 색을 드러내는 작품들도 있고, ‘세코 프레스코화’ (Secco는 이탈리아어로 ‘말라 있는’) 작품들도 있다. 후자는 이미 건조된 석회에 물감을 안착시키는 고도의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나오는데, 색이 묻어나거나 흐르는 느낌 없이, 번지는 느낌 없이, 깔끔하고 밝게 보여 생생함과 깊이를 갖게 한다. 

전자처럼 녹여 내기도 하고, 후자처럼 새겨 내는 감각적인 기술에 색을 여러 번 안착하게도 한다. 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화폭의 공간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고, 선이 깨어져 끊어져 있기도 하며, 색들이 석회 사이 포근하게 들어가 채운다. 재질의 특성과 기법 때문에 이들 사이, 빛과 색이 부드럽게 산란해서 화폭 전체가 빛을 품는다. 그래서 시간을 흘러가게 하며 작품의 다양한 변화를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품에서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서서 감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품이 있는 공간이 빛에 예민하게 감각적인 반응을 하며 빛을 품어 머금는 것을, 색과 형태가 이런 빛과 함께 입체적으로 조각처럼 흘러나오는 멋을, 빛의 시간의 변화에 따라 감상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급의 단단한 대리석이 아닌, 누런 돌로 지어진 교회건축물이 정동을 향해, 동트기 직전, 미명에도 곧 빛을 빨아들여 스스로 빛나서 주위를 밝히는 것 같다. 작품들을 조그만 빛의 시간에 감상할 필요가 있다. 색이 밝고 경쾌하지만, 빛은 튀어나지 않고 물과 습기를 빨아들이듯 머금어 스스로를 빛내어, 그림이 자리한 공간을 다양한 색 빛으로 채운다. 화폭의 여백들도 이런 빛의 작용에 적합하고, 이 사이에서 색들이, 빛이, 사물들이 만나 하나가 되기도 하고, 생성되는 생동감도 깃들어 있다.

보는 이를 품어 주고 녹여 주고 머금게 하는 전시회

[바닥에 새겨진 사랑] 전시회, ‘Thorn tree-first love’ (떨기나무-처음사랑) 시리즈 작품들은 조용히 바닥에 글씨를 쓰신 예수님의 사랑처럼 준비되었다. 구원과 희망의 빛의 실재 앞에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 빛을 ‘머금고’ 자신의 어두움에 ‘빛나게 될 수 있다’는 꺼질 수 없는 사랑의 확신이다. 그림의 구도와 소재들, 그리고 자신만의 그림 기법, 이 셋이 서로 하나되어 모두가 탁월하게 이것을 표현해 냈다. 

작가는 쉽게 눈에 들어오는 ‘튀는’ 아름다움과 씨름하며, 시간을 두고 차분히 깊고 오랫동안 느끼게 될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사실 다양하고 놀랍게 느낄 아름다움을 새겨냈다. 부드러운 빛감으로 조각처럼 도드라져 다가오는 아름다움 속에 인간의 돌같이 굳은 무감각을 품어 녹여내는 세밀함이 차 들어온다. 무던하지 않고 밝고 가벼운 색들도 마음과 영혼의 무게를 덜어주며 고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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