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출산장려협회 회장 박희준

“국가가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나라의 재앙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요. 저출산은 고령화에 맞물려 국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이 같은 움직임을 보고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막지 못하면 저 혼자라도 이일을 위해 앞장 서려고 합니다.”

박희준 (한국출산장려협회 회장, 씨에이팜 대표이사)은 국가 대신 출산장려운동에 심혈을 기울이는 숨은 애국자이다. 우리 국민 누구나가 저출산 문제를 알고 있지만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질 뿐 적극적인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절감한 박 회장은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맨 먼저 하는 사람이 애국자라는 판단 아래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가 ‘한국출산장려협회’라는 단체를 만든 것도 앞으로 이 문제를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운동으로 확산 시켜야 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 국가를 대신, 출산장려운동을 펼치는 이유는.

△ 남들이 보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기업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이 이러한 일을 추진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지난 80년대 초 우리나라의 정부 시책은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 아래 산아제한을 위해 부부가 불임수술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입사하여 병원 영업사원으로 현장을 뛰면서 이러한 생각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젊은 나이였지만 내 자신의 생각은 저출산은 향후 고령화를 부추기고, 머지않아 사회적 재앙으로 발전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아기 울음소리가 지나치게 준 것이 이미 피부로 느껴졌다. 그리고 1989년부터 잠시 건설업계로 다른 길을 걷다가 부도를 맞고는 10년 만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깨달음 속에 다시 제약업계로 돌아왔다. 때는 1997년, 이미 출산율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종합병원 산부인과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우연히 두 임산부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배가 터서 아이를 더 낳고 싶어도 못 낳겠다는 거예요.” 당시만 해도 ‘튼살’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거든요. 배가 튼다는 게 뭘까 하고 알아 봤지요. 임신하면 대부분 피부가 늘어나면서 살이 튼다는 겁니다. 마침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여기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찾은 것이지요. ‘튼살’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도 그때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3년에 걸쳐 310번째 도전 끝에 ‘튼살크림’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책상에다가 “난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표어를 붙이고 매일같이 마음을 다잡았듯이 박 회장의 책상에도 ‘한국출산장려정책협의회’와 ‘청소년의날제정운동협의회’라는 두 개의 표어가 붙이고는 “제 여생을 봉사로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순수 민간단체로 시작하여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이 두가지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결심했지요.” 제약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튼살이 생기는 것이 유전뿐만 아니라 부신피질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것임을 발견하고는 여기에 착안하여 과학적인 근거 하에 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화장품을 개발하자는 취지에서 회사를 재 창업하여 화장품과 의약품을 융복합한 더마코스메틱 화장품으로 ‘튼살전문크림’을 개발하게 되었고 산부인과 전문의의 인정을 받는 것은 물론 임산부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렇게 해서 박 회장은 재기에 성공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말이 있지요.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제가 CSR(Co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넘어 CSV(Creating Shared Value)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이 있으면 사회가 있고 사회가 있으면 국가가 있으며 이제는 국가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만큼 시야도, 서로에게 미칠 영향력도 커졌다. 그래서 기부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책임을 넘어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더욱 강조될 수 밖에 없다는 박 회장이다.

세계 최초 ‘튼살전문크림’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떼고 있는 ㈜씨에이팜의 시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1차로 먼저 혼자서라도 불쏘시개 또는 마중물로써 출산장려운동을 시작하기로 하고 병원 산부인과 세미나를 개최하여 전문의를 통해 출산장려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이후로는 정부나 국회의원도 찾아다니며 출산장려를 위해 과거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정책을 제안하는 등의 출산장려운동을 펼치면서 2006년도에 정부의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시행되는데 직간접적인 기여를 했다. 시행 이후 2007년도에 잠시 출산율이 증가하긴 했으나 황금돼지해란 특수성으로 2008년도에 접어들어서는 하락국면으로 접어드는 걸 보고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개인적 차원으로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서는 민간차원의 단체 설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출산장려협회’라는 단체가 정부와 협업하여 낼 수 있는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8년도에는 인터콘티넨탈호텔에 250명을 초청해서 출산장려와 관련된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여기에 든 예산만 2,000만원이 넘었다. 왜 이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일을 하냐고 묻더군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먼저라도 하겠다’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2010년도에는 ‘한국출산보육장려협회’라는 이름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300여명의 임산부와 여러 귀빈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성대하게 출범식을 치렀다. 그 후 ‘한국출산보육장려협회’는 업무 분야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2013년에 ‘한국출산장려협회’는 이름으로 출산분야에 더욱 집중한 홍보와 교육, 강연 등 출산장려캠페인을 벌여온 것이 올해로 7년째다. 그리고 지금 서울특별시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기 위해 진행 중에 있다. 사단법인 인가가 이루어질 경우 인적네트워크가 확대되고 타 단체와의 업무협약체결 등 협회의 외연이 크게 확장될 수가 있어 국내의 출산장려운동의 구심점이 되리라는 고무적인 전망도 가능하다.

― 국가 사업성을 가진 일을 개인적으로 단체를 결성 한 것으로 외 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은 적도 있을 텐데.

△ 그렇다. 처음에는 사업의 목적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은 이 운동의 확산을 지켜 보면서 마치 무슨 관변단체나 이익단체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 무슨 협회나 단체들이 국가 관변단체로 둔갑해 지원금이나 받아내는 일이 많아 우리도 그런 속샘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다. 외부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 단체를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 안에 본부를 두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기부금을 받아서 협회 사무실을 별도로 운영을 하다가 지금은 회원이 기부한 사무실을 이용해서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문제는 내 자신만의 일이 아닌 닥쳐올 미래에 모든 사람들이 감내 해야 할 일 이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서 단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 기업 본연의 사익과 사회나 국가의 공익적인 사업을 병행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지난 2010년의 출범식 이후 지금까지 만 6년동안 한국출산장려협회에 매년 현금과 현물을 지원하며 협회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간 40여회의 산모교육시스템인 ‘맘비스쿨’ 실시와 더불어 이주여성지원센터 지원과 다둥이 마라톤대회, 여성마라톤대회, 미혼청춘들의 만남행사인 ‘솔로1004’를 지원하고 임산부포럼과 출산장려구국운동포럼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주최하거나 지원했다. 세계 각국의 한인회를 방문하여 결혼, 출산 및 보육관련 정책토론회를 가지기도 하고, 대학에서 저출산 고령화를 위해 ‘결혼과 과정’이란 과목으로 강의도 하고 아울러 지속적인 강의를 위해 만학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기도 하고, 국제봉사단체인 로타리클럽 뿐 아니라 라이온스클럽에서는 회장으로서 출산장려운동을 펼치는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자아정체감(Ego-identity)이 형성되는 10대 중고등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출산장려 조기교육의 일환으로 ‘청소년의 날 제정’을 위해 협찬금과 협찬품을 지원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크고 작은 봉사활동에 몰두하다보니 과로가 겹쳐 지난 2013년에는 위암수술을 받은데 이어 2016년에는 간암수술까지 받았다. 계속해서 병마와 싸워 왔지만 투병 중에도 한번 시작한 일에 대한 열정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매월 사무실 운영비와 행사 등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이 사업은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한다’는 일념때문인지 병마까지도 거뜬히 딛고 일어서 계속해서 일을 추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소명을 갖고 하는 일에 동참자들이 늘어났다. 이제는 사단법인을 준비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덕망이 높은 인물을 영입하고 있어 날로 세가 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감내하기에는 벅찬 사업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지표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며 근간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출산장려운동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여러 가지 여건 상 출산 뿐 아니라 결혼, 임신까지도 기피하는 추세 또한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간의 ‘한국출산장려협회’는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기에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도 뚝심을 고집한다. “바위를 뚫을 수 있는 것은 거센 폭풍을 동반한 파도가 아닙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숫물이지요. 지속적인 진정성은 결국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낙숫물로 구멍을 뚫는 심정으로 출산장려운동을 차근차근 진행하려 합니다.” ‘출산장려운동이야말로 제2의 구국운동이자 애국운동’이기에 여기에 기여하는 것이 더욱 뜻 깊다는 박 회장이다.

▲ 여성가족부 장관상

― 우리나라에 당면한 저출산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막 기 위해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보건복지부 장관상

△ 지난 2012년 합계출산율이 1.30명으로 정점을 찍고서는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1,17명이다. 갈수록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지난 5년 전에 스스로 예견했던 현상들이 올해부터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인구감소현상이 멈추려면 앞으로 20년 이내에 대체 인구수인 2,1명은 낳아야 하고, 나라가 부강하려면 앞으로 50년 내로 가구당 3명씩을 낳는 것이 1차적 목표입니다. 아울러 평화통일이 되어 인구 1억명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결혼, 임신, 출산 그리고 보육정책 등의 여러 가지 정책적 대안들을 건의하고, 국민 의식 개혁운동을 펼치는 등의 활발한 활용으로 인재한국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한국출산장려협의 비전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내의 내수시장도 활발해져 국가 자생력이 강화될 것이다. 출산장려 이벤트를 통해 샐프매칭 콘텐츠 개발을 완료했고, 3명이상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의미의 뱃지와 홍보용 카타로그도 제작해 정부 언론 각계단체를 상대로 배포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각 분야의 봉사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각 위원회의 실무자들이 선정 될 것이다. 대외적인 홍보와 각종 이벤트행사도 추진 중이다. 결혼-임신-출산-보육으로 이어지는 출산장려운동이 바로 협회의 근본 취지다. 그간 정부가 나서 백조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출산장려운동을 추진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나 순수 민간차원의 협회와 더불어 협업이나 협치를 하게 된다면 성공하지 못할 일도 아닐 것이다. 지난 2012년 임산부의 날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로부터 장관상을 받았다. 상을 받았다는 기쁨 보다는 유일하게 민간기업인인 내가 추진하는 일이 정부 측으로 부터 인정 받았다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 독일 퀼른 유학박람회

―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간략히 소개 하고, 회사 운영 과 출산장려운동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

△ ㈜씨에이팜 은 지난 2001년 8월에 창업한 대표브랜드 ‘프라젠트라’를 보유한 기업이다. ‘프라젠트라’ 임산부제품과 베이비제품은 네이버와 G마켓에서 전체 판매 1위를 차지하는 강력한 브랜드이다. 화장품과 의약품의 장점을 결합한 더마코스메틱 화장품을 개발 생산 중이다. 특히 현재 기능성화장품으로 고시된 튼살과 아토피 뿐만 아니라 맘앤베이비전문 브랜드로써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뛰어난 보습 성분을 함유하고 유효성분이 피부의 진피 층까지 전달되는 신속한 효과를 나타낸다. ‘프라젠트라’는 미국 FDA를 비롯하여 유럽, 일본, 중국, 베트남에서 인증을 받은 상태이다. 맘앤베이비 전문크림으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배가 트는 게 무서워서 아기를 더 못 낳겠다’는 임산부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어 개발한 제품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출산장려와 관련 있는 제품이다. 지금은 모든 임산부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큰 관점에서 보면 출산장려운동이라는 공익과 기업 본연의 사익을 결부시킨 공유의 가치를 창출시키는 기업이다. 그래서 출산장려정책으로 두 자녀 이상을 임신출산한 임산부에게는 50%로 제품을 할인해서 공급하고 있으며, 세 자녀 이상 임신출산시에는 무료로 기부하고 있다. 또한 우리 회사 제품은 2012년 중소기업청에서 수출유망기업으로 지정됐고, 중국과 미국에는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조만간 일본의 현지법인도 준비 중에 있기도 하다. 회사의 비전으로는 글로벌 대표브랜드, 히든챔피언기업, 한류의 글로벌화로 국내 및 전 세계 맘앤베이비 전문기업으로 호평 받음은 물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 한국출산장려협회 시무식사진

‘고객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CAPHARM is respected and loving company!’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