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계획적이고 늑장 행정으로 기업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탄소배출권 기본계획이 시작되는 시기로부터 6개월 전에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 발표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기업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을 19일에야 확정했다. 시행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 발표한데다 온실가스 배출한도를 기업 배출예상량보다 15%가량 줄여 기업은 부담이 커졌다고 볼멘소리 일색이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제2차 계획기간(2018~2020년) 국가 배출권 할당 계획안’을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내년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을 5억3천846만 톤으로 확정했다. 계획안은 3년짜리 여야 하지만 2018년도 분 배출권인 1단계 계획만 냈다. 기업이 향후 몇 년을 예상한 뒤 경영계획을 세운다는 것을 고려하면 불확실성에 따른 기업의 부담은 늘어날 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또 100% 무상 지급하던 배출권 중 3%는 유상으로 제공한다는 계획도 냈다.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이 낮거나 온실가스 배출 규모가 작은 기업에만 한정한다고 했지만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더 커지는 요인이다. 탄소배출권은 교토의정서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의무 부담국이 개도국 등에 온실가스배출 저감설비 등을 설치해주는 만큼 온실가스를 추가로 더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탄소배출권 가격이 폭등하면서 기업들이 수급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기업들은 현재 배출권 가격이 본격 거래가 시작된 지난해 6월에 비해 47.6% 상승했다며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배출권 가격 급등은 기본적으로 수급 불안에서 비롯된다. 할당량이 남아도는 기업이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지 않아 이상급등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에너지 정책의 급변경과 이로 인한 정책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 데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BM(BenchMark) 할당방식도 확대키로 했다. 개별기업의 과거 온실가스배출 실적이 아니라 동종 업종의 시설 효율성을 기준으로 할당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상대평가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자금이나 경영사정이 열악한 기업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러니 기업 현실을 외면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하나의 이념이나 명분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물론 신재생에너지 기술 수준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 추세 등 모든 요인을 감안해야 한다.

당국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존 원전 감축정책을 유보하겠다고 언급한 배경을 귀담아듣길 바란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국제사회의 최우선 해결 과제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다. 원전은 탄소 배출을 가장 적게 하는 전력원"이라고 강조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 아닌 탈 탄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 안팎의 목소리를 경청하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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