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이 취지와 달리 ‘반쪽 활동’만 하게 될 공산이 커졌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초대형 IB의 신용공여 대상을 IB의 고유업무나 신생·혁신 기업으로 제한하고, 건전성을 은행에 준하는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다. 혁신위는 또 초대형 IB가 정상적인 발전 모습을 보일 때까지는 건전성 규제와 투자자 보호를 일반은행과 유사한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21일 발표했다.

이에 금융투자업계는 혁신위의 권고안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또 막 닻을 올린 초대형 IB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개 증권사는 초대형 IB 간판을 단 지 겨우 한 달여가 지났는데 투자은행으로서 제대로 청사진도 그려보지 못하고 규제의 벽에 막혔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증권업계의 숙원인 초대형 IB는 5개 증권사를 중심으로 지난 11월13일 출범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어정쩡한 출발이었었다. 5개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에만 자체 어음을 발행해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발행어음 사업까지 인가했다. 정부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며 2011년 정책을 추진한 지 6년만이다. 하지만 글로벌 IB인 골드만삭스를 흉내라도 내려면 넉넉한 자금 확보가 필수다. 그런 점에서 당시 한투증권에만 발행어음 사업을 인가한 건 ‘반쪽 출범’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설상가상 금융행정혁신위가 IB의 신용공여 대상을 IB의 고유업무나 신생·혁신 기업으로 제한토록 권고했다. 현실성이 결여된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물론 초대형 IB들이 발행어음 사업으로 조달한 자금을 대기업, 우량기업 등 안전한 곳으로만 투자하는 것은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리스크가 매우 높은 신생, 혁신기업 쪽만으로 공여 대상을 원천적으로 제한함과 동시에 건전성은 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매우 힘들고 IB와 기업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더구나 혁신위 권고는 다분히 편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권과 증권업계가 초대형 IB 업무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위가 사실상 은행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초대형 IB의 위험요소도 적지 않다. 당장 국내 금융시스템에 과도적 혼란이 예상된다. 일부 지적처럼 IB의 ‘고위험 투자’는 미국의 반복적 금융위기처럼 단숨에 전체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위험도 있다.

하지만 위험을 핑계로 머뭇거리다간 금융산업 도약은 결코 기약할 수 없다. 초대형 IB 육성에 나선만큼, 한투증권 외 나머지 IB들에도 조속히 발행어음 사업을 허용해 실질 경쟁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규제도 더 과감히 풀어야 한다. 그래야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첨단 금융기업 도입도 촉진될 것이다. 당국은 이제 갓 싹을 틔운 초대형 IB들이 은행과 같은 건전성 규제를 받으면 성장모멘텀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를 귀담아듣고 규제를 과감히 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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